<북팀장의 문장과 책>우리도 지금 歷史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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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인간을 만든다. 이 중요한 사실을 역사가들조차 흔히 잊곤 한다. 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거대한 설명 틀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하는 기본적인 이야기가 빠지면 생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가란 인간의 살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식인귀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휴머니스트) 첫 페이지, 첫 문장이다.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는 어떻게 형성되었나라는 질문에 몰두하며 복잡한 유럽 근대사의 대중적 내러티브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이번 책에서는 인물로 보는 서양 근대사를 시도한다. 그가 인물사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인간을 만든다”는 그의 말이 대신 설명하고 있다. 책은 중세 말과 근대 초 유럽 세계를 살았던 8명, 그들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근대는 어떻게 열렸는지를 보여준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국왕을 도와 백년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단 판정을 받고 화형당한 잔 다르크, 강력한 왕조국가를 만들기 위해 여성 편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헨리 8세, 기이한 중세적 종말론자였지만 바다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정신 세계와 신념을 만들어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르틴 루터…. 저자는 이들을 한 쪽 발은 중세에 둔 채 두 눈은 떠오르는 근대의 별을 향하고 있던 인물이라고 했다. 때로는 중세의 고색창연한 사고방식과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결국 이들의 행위는 근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여덟 명의 인생 이야기만 보아도 유럽 근대 세계가 얼마나 복잡다기하며 활력 넘치는 곳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대가 이들을 불러냈고 다시 이들의 삶이 시대의 흐름을 가속화했다. 인간은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 속에 떠내려가는 미물 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나약하고 고통받고 어리석어 보이는 인간의 행동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쓰고 있는 시대, 다시 한번 신발 끈을 고쳐 묶게 하는 문장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