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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1일(金)
“30년간 모아둔 배낭속 추억 덕에 老年이 풍요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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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서 잠시 쉬고 있는 김현(오른쪽)·조동현 부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165개국 함께 누빈 ‘부부 배낭여행가 1호’
70대 커플 김현·조동현씨


“좋은 일은 서두르자. 좋은 일은 절대 그냥 놔두지 말자.” 누구의 말일까. 내년 각각 팔순(80)과 희수(77), 그리고 결혼 50주년을 앞둔 어느 부부다. 흔한 표현으로 ‘70대 노부부’ 인 김현(79)·조동현(여·76) 씨다. 두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삶, 지금 걷고 있는 길, 나아가려고 하는 세계에 대해 듣노라면, 세대와 사람을 물리적인 숫자로 구분 짓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된다. ‘인생은 60부터(100세 시대라 이 또한 70으로 바뀌었지만)’라는 다소 진부한 문구를 꺼내 들려는 건 아니다. ‘마음이 젊으면 언제나 청춘’이라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른다.

숙명과도 같은 70여 년을 이렇게 보낸 후, 여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이들은 몸소 보여줬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바깥세상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정보가 서점가에 쏟아져 나왔다. 1995년 베스트셀러 ‘여보, 우리도 배낭 여행 가볼까’로 화제 몰이를 하며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부부 배낭여행가 1호’ 김현·조동현 씨. 해외·배낭·부부 여행이라는 분야를 선도했던 이 부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이 많죠. 고마운 분들에게 변변히 인사조차 드리지 못했어요. 우리 부부가 이러이러하게 살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 알려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 말이에요.”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에서 이들을 만났다.

박동미 기자 pdm@ munhwa.com

#1. “제2의 인생…우리의 황금기”

배낭을 꾸리기 시작한 지 30년, 첫 책이 나온 지 22년이 흘렀다. 50대였던 부부는 70대가 되었고, 그 사이 10권의 책을 냈다. 12년간 출연한 인기프로그램 ‘세상은 넓다’는 폐지됐으며 무엇보다, 이젠 연간 1500만 명의 사람이 수시로 비행기를 탄다. 해외여행이 매우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좋은 건 미루지 말자”는 부부의 가치관, 즉 현재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신인류의 시대인 셈. 조 씨는 “40대 후반부터 여행에 미쳐 있었던 덕에 70대가 더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야와 이해가 깊어졌어요. 같은 시간에 같은 사물과 풍물을 대하게 되니 대화할 내용이 많아졌고 신혼 같은 달콤한 느낌에도 젖어들었죠.”

1990년대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가 등장했을 때 부부는 40여 회 이상의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 잘 알려진 대로 남편 김 씨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KBS와 TBC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직업 특성상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했고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데에 능했다. 김 씨는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늘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배낭 여행가가 되겠다고 결심 한 것. “당시 ‘하늘에는 안창남(비행기 조종사), 땅에는 엄복동(자전거 선수), 여행은 김찬삼(여행가)’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도 한 가지 분야에서 1인자가 되고 싶었어요. 순간 떠오른 게 ‘대한민국 최초의 부부 배낭 여행가’였죠. 이 별칭은 우리 부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말입니다.” 김 씨는 “대부분 나이가 들면 편안하고 우아한 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나이 든 사람이 배낭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냐”며 “여행을 열심히 다닐 수 있었던 때가 바로 우리 부부의 황금기였다”고 말했다.

책도 많이 냈다. ‘여보, 우리도 배낭 여행 떠나요’를 비롯해 ‘해외여행에 꼭 필요한 158가지 도움말’ ‘김현·조동현 부부의 세계 도시기행’ 등이다. 2013년 ‘70대 인생을 재밌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가 마지막 책이 될 줄 알았는데, 부부는 목표를 수정했다. 두 권을 더 내 총 12권을 채우려고 한다. “저희의 삶을 통해 100세 시대 한국의 많은 부부가 행복한 노년기 밑그림을 그리길 바랄 뿐이에요.”

#2. “우리 안의 세계도 넓어졌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부부는 본격적으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2년을 앞당겨 명예퇴직을 했고 교사였던 조 씨는 방학을 이용해 동참하다가 퇴직 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부부는 “운이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타이밍이라고 하죠. 부부 배낭여행가가 될 수 있는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들어갔어요. 해외여행이 자유화됐고 ‘세상은 넓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생겼고 ‘여행가의 길을 가보고 싶다’는 말에 아내가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해 준 거죠.”

부부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세상은 넓다’에 출연했다. 자신들이 본 감동적인 풍경을, 또 지구 방방곡곡에서 맞닥뜨린 사람 냄새 나는 에피소드를 고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객이 급증하던 시기여서 한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 세계 명소, 관광지에서 부부를 초청하기 시작했다. ‘무슨 돈이 많아 저렇게 다니나’하던 의문이 풀린다. 또 부부가 ‘운’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납득이 간다. 방송국 PD와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30년간 영위했고 부부 배낭 여행가로 주목받으니, 적은 비용으로 해외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거다.

김 씨는 “별 두 개 이하의 숙박 시설만 이용하고 음식값을 줄이기 위해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택시는 타지 않았다”고 했다. “한 번은 아내와 나란히 어느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데 마실 것 없이 빵만 먹고 있었어요. 그곳을 지나던 한국인 여행자가 생수를 주고 간 적도 있죠. 파리에서는 몇 천 원 택시비를 아끼려고 부부싸움이 났어요. 숙소까지 택시를 타자는 내 말에 아내가 끝내 버스를 고집했던 거죠.” 2007년 ‘세상은 넓다’의 마지막 방송에서 부부는 남미 일주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쩌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작은 깃발을 꽂아 본 적이 있다. 몇 개국이나 다녔는지 누군가 질문해서다. 약 165개국이다. 부부도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지만 밀도 높은 기억, 즉 추억들은 오롯이 박혀 있다. 맨해튼 5번가의 번화가 벤치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기억, 캐나다 캘거리 호텔에서 경비를 아끼느라 컵라면을 사 먹었던 일,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배를 타고 폭포 밑까지 갔는데 갑자기 남편이 입맞춤을 한 일, 알래스카와 후쿠오카(福岡)에서 부부가 쓴 첫 책을 들고 여행을 다니던 다른 부부를 만난 일 등.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일이 있었고 여행 사진은 두꺼운 앨범으로 150권을 채웠다. 10달러 이하, 가장 의미 있는 것만 사자고 하며 모은 기념품도 3000점이 넘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남은 게 없다. 퇴직 후 여의도를 떠나 두 번 이사를 했고 수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실버타운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여행 관련 자료들을 모두 정리했다. 가슴 속에 모든 풍경을 담았으니 더는 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3000권의 여행 책과 슬라이드, 사진, 비디오테이프 등 40박스를 도서관과 박물관, 대학 연구실, 노인요양소 등에 기증했어요. 그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사진도 동영상도 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찍어올 수 있었을 테고 정리도 더 쉬웠을 것 같은데 말이죠.”

# 3.“열심히 사는 8090이 멘토”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부부는 김 씨의 70세를 기해 ‘세상은 넓다’에서 하차하고 여행 자료들을 정리(물론 지금도 여행을 멈추지는 않았다)하고 있다. 마치 인생을 차분히 마무리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부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요셉과 요세피나. 큰아들은 신부가 됐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원 없이 놀다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우리 부부에게 후회란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신앙의 힘이 여행으로 점철된 부부의 인생과 지금의 일상을 지탱해 준다고 믿는다. 김 씨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작나무’를 인용해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준비하는 그만의 자세를 강조했다. ‘오늘은 나머지 날의 첫날/인생은 길 없는 숲이고/길을 찾아 숲 속을 헤매는 것이/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조 씨는 구상(1919~2004) 시인의 ‘병상우음’으로 종종 삶을 되돌아본다고 했다. ‘앓아누워야만/천국행 공부를 한다(중략) 교과서야 있고/참고서도 많지만/무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갈피를 못 잡고 허둥댄다.’

내년이면 팔순과 희수를 맞이하고 또 결혼 50주년 ‘금혼식’이다. 그런데도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어려서 좋겠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사실이다. 부부가 거주하는 실버타운에서 70대는 아직 젊다. 대부분 80대고 90이 넘은 입주자도 많다. 처음에는 요양소처럼 생각한 편견이 있었지만 방문 후 마음을 정하고 입주했다. 피트니스센터, 실내 골프장, 탁구장, 수영장 등 휴식과 각종 레저를 즐길 수 있어서 활동적인 부부에게 잘 맞는다. 무엇보다 고령의 입주자들이 봉사활동과 취미생활 등 ‘일거리’를 만들며 여전히 삶을 충실하고 보람있게 가꿔 나가고 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80~90세가 넘어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마치 우리의 멘토처럼 느껴집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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