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미래를 보다>빛나는 ‘국민 여동생’… “우린 아직 배고파요”

- 여배우 氣살리기

박보영과 심은경, 사뭇 다른 결을 가졌지만 다양한 흥행작을 내며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공유하고 있는 여배우다. 아직 20대임에도 일찍 성공을 경험한 두 사람은 과거의 행적보다는 미래의 행보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배우들이 맞는 현실이다.

“다양한 작품 만나 행운 … 뭘 하고픈지 계속 되뇌어”
배우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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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가 다양한 작품을 만난 건 행운이죠.”

충무로에서 홀로 영화 한 편을 책임질 수 있는 여배우는 드물다. 남자배우에 비해 여배우들의 티켓파워가 약해 투자 유치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심은경(왼쪽 사진)은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다. 주연작인 ‘수상한 그녀’와 ‘써니’로 16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부산행’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영화’를 두루 거쳤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여배우가 출연할 만한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껴요. 여성보다는 남성 중심의 영화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죠. 그러고 보면 제가 출연한 작품과 캐릭터를 맡을 기회가 제게 들어온 것 자체가 행운이에요.”

그런 심은경이 새로 선택한 영화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이다. 최민식, 곽도원, 문소리 등 쟁쟁한 배우들과 기싸움을 벌어야 하는 고된 작품이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최민식과 첫 대면했을 때는 너무 긴장해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지만, 그들과 어깨를 견주는 동안 심은경은 더욱 단단해졌다. 극 중 그가 맡은 역은 선거판에 뛰어든 광고 전문가 박경. 3선 서울 시장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의 이미지 메이킹이 그의 몫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올드보이’예요. ‘선배님과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라고 동경했는데, 제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죠.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선배님이 본인 촬영이 없을 때도 현장에 와서 모니터링을 해주며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주셨어요. ‘특별시민’ 속 박경은 분명한 자기색을 가진 여성 캐릭터였기 때문에 꼭 시도해 보고 싶었죠. 여러모로 제 갈증을 해소해준 작품이에요.”

‘특별시민’ 속 시장 선거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른다.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봉하는 터라 시사하는 바도 크다. 3년 전 기획 단계에서는 탄핵 정국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이 시기에 ‘특별시민’을 내놓는 심은경의 마음도 남다르다. 게다가 올해 만 23세가 된 심은경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투표권을 갖게 됐다.

“정치라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특별시민’ 촬영 후 더 많은 부분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대선 후보들 토론을 보면서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죠. 박경이라는 인물은 겁없이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 미생’이에요. 완벽함보다는 신념과 꿈을 계속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저랑 닮은 점이 있죠.”

어찌보면 심은경이라는 배우에겐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빨리 영글었다. 그래서 베테랑 배우들과 어우러져 한마당을 꾸민 ‘특별시민’은 그에게 더욱 특별하다. 현재의 심은경이 가진 고민을 숱하게 곱씹으며 연기로 승화시킨 선배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시민’을 찍으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배우가 되는 게 내 길인지’ 끊임없이 되뇌었죠. 제 나이에 비해 값진 것을 많이 경험해본 것에 감사하게 됐어요. 제 부족함을 채우며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로 웅변한다는 건 큰 힘 … ‘영향력’ 잘 쓰고파”
배우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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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민 여동생’이라고 안 불러주시던데요.”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배우 박보영(오른쪽)이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투정을 부렸다. 유난히 앳되고 귀여운 외모 덕에 다수 작품에 출연하며 ‘국민 여동생’이라 불렸던 그다. 하지만 그런 수식어에 발목이 잡힐까 고민이 깊을 때도 있었다. 이미지 변신이 녹록지 않은 한국의 연예 환경 속에서 여배우들의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예전에는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을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웃음)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시간이 좀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아요. 20대 때는 ‘부딪혀도 깨져도 괜찮다’는 변명 뒤에 숨었는데, 나이를 먹으며 얻는 것만큼 잃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좀처럼 스스로 만족을 못 느끼니 자존감도 낮아지는 것 같아요.”

박보영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박하다. ‘과속 스캔들’과 ‘늑대소년’으로 1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고 tvN ‘오 나의 귀신님’으로는 8%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뒀다. 최근 종방된 JTBC ‘힘쎈여자 도봉순’은 역대 JTBC 드라마 최고 시청률(9.668%)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배가 고프다. 과거에 안주하기보다는 항상 다음 행보를 내다보는 습관 때문이다.

“매번 차기작 선택을 두고 고민이 많아요. 제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한정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맡았던 인물의 이름도 봉순이, 영숙이, 정남이 등이었어요.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팬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작품도 선택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시선보다는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대중적 이미지 때문에 카페에 갈 때도 들어서는 순간부터 웃는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편하게 다니려 해요.”

20대 여성으로서, 20대 여배우로서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박보영에게 ‘힘쎈여자 도봉순’은 힐링(healing)을 주는 작품이었다. 드라마 속에서나마 힘이 강한 설정을 통해 약자를 도와주는 기쁨을 맛봤다. 이런 박보영의 생각은 도봉순을 통해 투영됐고,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고 호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항상 도봉순처럼 힘이 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도봉순처럼 강하다면 실제로 나쁜 사람을 혼내주고, 지나가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진짜 제가 그런 힘이 있었다면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어요. 이 드라마는 멜로가 중심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성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죠.”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박보영.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는 뿌듯함이 외로워도, 슬퍼도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연기로 웅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자 힘이에요. 배우는 대외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갖는다고 하는데, 그 영향력을 정말 더 잘 쓰고 싶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