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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6일(水)
“한문으로 된 우리 古典 편입하는 中 ‘古書공정’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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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연구원 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번역원 청사 도서실에서 1993년 26년 만에 413책으로 번역이 완성된 조선왕조실록을 펼쳐보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왕조실록은 현재 재번역 중이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지난 2월 신승운(66)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가 한국고전번역원의 제4대 원장에 취임했을 때, 도올 김용옥은 “단군 이래 최대의 정명(正名)인사”라며 축하를 했다. 신 원장과 도올의 인연도 있지만, 단순한 상찬만은 아닐 것 같다. 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부터 고전번역원이 우리 고전번역의 컨트롤타워로 현재의 틀을 갖추기까지, 고비마다 신 원장은 도약의 디딤판을 놓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기획의 귀재’다. 그는 고졸 체신공무원으로 출발해 고전번역원의 수장(首長)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민추 시절 20년을 근무하다 1995년 성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 8월 정년퇴임을 한 뒤 2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청사에서 만난 신 원장에게 금의환향(錦衣還鄕)의 느낌을 먼저 물었더니 “‘고향’은 맞지만 ‘금의환향’은 듣기에 좀 그렇고요. 감회보다는 긴장이 더 큽니다. 어떤 장기 비전으로 고전번역사업의 중흥을 모색할지, 노년에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 원장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30∼40년을 바라보는 “번역원의 큰 그림”을 언급해 직원들에게 ‘기대’와 ‘긴장’을 동시에 갖게 했다. ‘번역원 역사의 산증인’인 그에게 고전번역의 세계로 뛰어든 계기와 민추 시절 얘기부터 듣기로 했다. 사실 그 안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역사와 현황이 대부분 들어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기 양평군 양동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까지 양동에서 마치고 원주의 이모댁에서 원주고를 다녔다. 한문 문장이나 한시 외우기를 즐겼다. 원주고 시절 이곳 출신 의병장 이은찬(李殷瓚·1878∼1909)의 추모비가 학성동에 세워졌는데, 추모비에는 그가 마지막 길에 남긴 사세시(辭世詩)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일지이수 작위선(一枝李樹 作爲船)’으로 시작되는 이은찬 공의 시를 외워 칠판에 적어 급우들에게 풀이해 준 적이 있다. 집이 어려워 1969년 3학년 1학기 때 공무원 행정직 5급(현재 9급) 공채에 응시해 합격했다. 당시 체신청으로 발령받아 마포우체국에서 말단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청계천 헌책방으로 책을 보러 다녔어요. 서구 고전들도 읽었지만, 논어나 맹자와 같은 동양의 고전들이 더 가슴에 와 닿더군요. 가슴 속에 우리 고전에 대한 결핍이 절실했던 때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그런 한문 고전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그를 고전번역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 같다.

“당시 신문에서 한학자 청명 임창순 선생이 세운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 강좌를 개설한 광고를 보고 찾아가 주경야독을 했지요. 그러다가 1974년 민추가 국역연수원(지금의 번역교육원) 1기 20명을 뽑는 데 합격했지요.”

태동고전연구소는 각 분야에 많은 대학교수들이 거쳐 갈 만큼 소위 명문대 대학원생들만 추려 한문 교육을 했다. 국역연수원도 대학 시간강사급들이 지원할 만큼 지원자의 학력 수준이 높았다.

“제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여러 원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던 때입니다. 성락훈, 조규철, 신호열, 임창순, 조국원, 이진영, 이가원, 이식 선생님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분들이었지요. 성락훈 선생님은 우리를 서종(書種), 말하자면 ‘글 종자’ ‘글 씨앗’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서종을 뿌린다’고 자주 말씀했어요. 우리를 키우는 것이 한문 고전을 계승할 다음 세대를 육성한다는 말씀이었지요.”

우체국에 ‘한문 공부하려고 공무원을 그만둔다’고 하니 기관장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처음에는 “사표 내지 말고 다녀봐라”면서 수리를 안 했다.

“연수원 때 매달 시험을 봐서 장학금을 주는데, 공무원 월급보다 조금 낮은 정도여서 회사를 그만두고 배수진을 치고 공부해도 되겠더군요. 연수원을 마칠 때는 전체 1등으로 장관상을 받았어요. 마침 민추의 1회 공채가 있었는데 합격해서 밤에는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낮에는 직원으로 일했지요.”

‘민추’ 하면 1980년대 중반 운동권 단체가 떠오르지만, 1965년에 창립돼 번역원이 생기기 전까지 42년 동안 존립했던 민족문화추진회를 말한다. 문인 박종화가 초대 회장을 지냈고, 이병도·최현배·이희승 등 학계 원로들이 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공화당 의장이었던 김종필(JP) 씨가 학계 원로와 한문학자 등을 초청해서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군부정권의 이미지와 안정에 문화계의 지원이 필요했고, 또 전후(戰後) 모든 것이 초창기였던 시절이니까, 문화계에서 국립박물관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짓고 하던 때였습니다.”

‘추진회’라는 이름에 그 한계가 있기는 해도, 내팽개쳐진 우리 고전을 처음으로 정리·번역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민간기구였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순시 때 번역작업을 점검하고, ‘목민심서’ 번역본의 제자(題字)도 직접 쓰며 관심을 보였답니다. ‘남북 경쟁’도 한몫을 했지요. 북한이 ‘리조실록’(조선왕조실록) 번역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재건이 필요했는데, ‘고전의 귀환’이 체제 경쟁에서 추동력을 받은 셈이지요.”

그는 민추에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30대 초반에 국역실의 부장 없는 차장을 했다. 그때 그가 만든 ‘우리 가슴에 우리 고전을’이란 슬로건이 오랫동안 고전번역원의 상징이었다. 그가 민추 도약의 첫 계기를 만든 게 1985년 무더운 여름 사무실에서 쓴 ‘고전국역활성화방안’이었다.

“문예진흥원 ‘문예연감’에 정부의 한국고전 국역사업 정책이 ‘주먹구구식’이라고 썼던 글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당시 문교부 고위 관료가 호출했어요. 들어가 고전번역 사업이 늘 예산 지원이 들쭉날쭉해서, 예산이 오르면 인력을 뽑았다가 예산이 떨어지면 우르르 내보내는 일이 반복된다, 이게 주먹구구가 아니고 뭔가, 라고 설명했지요.”

전화위복이 됐다. 오히려 문교부에서 전 사무관급 이상을 모이게 해 ‘고전번역의 이해’에 대해 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민추의 이병도 이사장이 국정자문위원이었는데, 회의에서 옆에 앉은 노신영 총리에게 ‘고전국역사업을 도와달라’고 말씀을 드렸고, 총리 비서실장이 와서 ‘무얼 도와주었으면 좋겠냐’고 해서 ‘고전국역활성화방안’ 기획서를 쓰게 됐어요.”

민추가 후반기에 비교적 재정 운영이 안정되고 현재 구기동 청사를 마련해 떠돌이 생활을 청산한 게 이 기획서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이듬해부터 전통시대 우리 문집을 집대성한 ‘한국문집총간’(정편 663종 350책, 2005년 완간, 속편 596종 150책, 2012년 완간)의 편찬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재원이 없는 재단법인으로,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민추는 불안정했고 답보상태였다. 정부출연기관 전환이 과제였다. 이 과제를 푸는 데 도올이 큰 도움을 줬다.

“민추의 이사였던 도올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고전번역사업의 중요성과 민추가 정부출연기관인 번역원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어요. 비서실을 통해 2006년 교육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한국고전 번역사업의 적극 지지자이며 후원자였던 도올이 민추의 번역원 전환과 번역대학원 설치를 위한 정책과제의 수행을 권유했다. 그동안 둘이 여러 차례 나눴던 내용이었다.

“당시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때여서 주저했어요. 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른 유관 기관들과 이해가 상충하는 지점들도 있을 수 있으니 관련 기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어요. 바로 승낙을 안 하니 도올이 처음에는 ‘마음이 바뀐 것이냐’며 채근했지만, 유관 기관도 마침 동의해서 종합계획안 수립을 맡았지요.”

2007년 말 드디어 민추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국고전번역원이 출범했다. 아쉬운 점은 ‘고전번역대학원’ 설립이 무산된 것. 번역원 설립을 지지했던 다른 기관들도 대학원 설립에는 끝내 반대했다.

“고전번역원은 번역과 전문인력 양성이 양 날개입니다. 지금은 고전번역교육원으로 이름이 바뀐 국역연수원이 1974년에 개원했고, 40년 이상을 고전번역 인재 양성의 텃밭 노릇을 해왔지만, 장기간에 걸친 교육으로 인재를 육성해도 그들이 학위를 받지 못하니 공부하려는 의지를 꺾습니다. 학위를 줄 수 있도록 대학원대학의 설립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 원장은 자치통감(資治通鑑) 중에 ‘유비상지인(有非常之人) 연후유비상지사(然後有非常之事)’를 읊었다. ‘비상한 인물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만들어 진다’는 뜻인데, 신 원장은 이를 “비상한 일은 비상한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로 가져다 쓴다. 사실 그가 두 번의 기획서로 민추의 도약과 번역원으로의 정착을 이끈 것도 ‘거절하지 못할 명분(비상한 일)을 먼저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번역원의 큰 그림’도 그렇게 구상하고 있다. 신 원장은 우선 “우리 고전을 한글로 바꾸는 건 우리 지식 콘텐츠의 총량을 늘리는 일, 우리 문화의 두께를 두껍게 하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유사 이래 우리 기록의 90% 이상이 한문이에요.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고전번역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바탕이 콘텐츠이고, 모든 콘텐츠의 바탕은 고전이잖아요. 중종실록의 몇 줄이 ‘대장금’으로 만들어져 한류를 불러일으켰고, 연산군일기의 한 대목에서 ‘왕의 남자’가 탄생했습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은 고서공정(古書工程)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영토에 관한 것이라면, 중국의 고서공정 중 ‘유장(儒藏)공정’은 한국·일본·베트남 등 유교권 유학자들이 쓴 문헌을 모두 자기들에게 편입한다는 겁니다. 또 ‘역외한적(域外漢籍)공정’도 있는데, 한국이고 북한이고 돌아다니며 한문으로 된 모든 서적을 촬영하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 영인(影印)도 못한 고서들이 개인이나 대학 교류를 통해 중국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우리 콘텐츠를 중국에서 사다 써야 할 때가 올 수 있어요.”

신 원장은 우리 한적들을 중국의 사고전서(四庫全書)처럼 종합적으로 정리할 계획을 갖고 있다.

“고전번역원에서 ‘한국문집총간’을 냈을 때, 어느 학자가 ‘사고전서 중에 1고(庫)전서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중국 고대로부터 청대까지 모든 서적을 망라한 사고전서는 경서(經書), 사서(史書), 제자(諸子), 시문집(詩文集)의 4부(部)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겨우 문집만 만들었다는 거지요.”

신 원장은 고전번역원이 컨트롤타워가 돼 여러 연구소와 공동으로 종합계획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마련하면서 고전번역원을 국가 고전번역사업의 컨트롤타워로 지정했다. 신 원장의 ‘큰 그림’이 내년에 서울 은평구 진관동 신청사로 이전하는 고전번역원의 중흥을 이끌지 기대된다.

인터뷰 = 엄주엽 선임기자 (문화부)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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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생 △강남대 도서관학과 △성균관대 도서관학과 석사, 문헌정보학과 박사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장, 편찬실장, 국역연수원 교수, 교무처장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성균관대 대학원 한문고전번역원통합과정 교수, 한국사서교육원장, 대동문화연구원장, 동아시아학술원장 △세계기록유산한국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및 동산분과위원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겸 문화정보분과위원장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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