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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학용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6일(水)
‘폴리페서 프리존법’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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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교수 사랑’은 각별났다. 장차관급 고위 정무직의 20%가량을 교수로 충원했다. 관료 출신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박 정부는 ‘폴리페서의 무덤’이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 연루돼 쇠고랑을 찬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이 모두 교수 출신이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배신의 본색(本色)도 드러냈다.

그 폐해를 목도한 19대 대선장(場)에서도 후보·교수 간 ‘정학(政學)유착’은 여전하다. 외려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이번 조기 대선에선 후보 캠프가 사실상 대통령직 인수위 역할을 한다. 그러니 폴리페서들이 가성비 높은 호기를 놓칠 리 없다. 이번에 베팅한 ‘권력바라기’는 얼추 2200명, 전국 교수가 7만5000명쯤 된다니 전체의 3% 수준이다.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에는 1400여 명이 활약 또는 암약(暗躍) 중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에도 500여 명이 진을 쳤다. 먹을 게 많으면 그만큼 파리가 꼬인다는 말 그대로다.

폴리페서의 현실정치 참여를 매도만 할 순 없다. 교수가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세상에 전파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나아진다면 반길 일이다. ‘통섭·융합의 시대’에 교수라고 상아탑에만 갇혀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전문성과 정무감각으로 무장한 채 소신과 원칙을 견지하며 국가발전에 공헌한 폴리페서들도 더러 있다. 개발경제 시대 땐 정책 결정에 독보적인 역할도 했다. 폴리페서의 효시 격인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대표적 인물이다. 정책기반이 취약한 당시로선 새 정책도 만들고 외국 제도도 도입해야 하니 유학파 교수가 ‘좋은’ 정치행정가일 수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이라 갈등을 조정할 필요도 없을 때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정치행정가는 시장·산업 수요에 맞춰 정책도 입안하고 이해당사자 간 갈등도 조율해야 한다. 교수직과 정치행정가 간 시너지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폴리페서가 청 수석이나 장차관 자리를 노린다면 탐욕이다. 요즘 같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단선적’ 교수 역량만으로 그 직을 온전히 수행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 폴리페서가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인지 폴리페서의 패역(悖逆)만 도드라진다. 망국(亡國)·망학(亡學)이란 힐책까지 나온다. 정책 성과는커녕 국정에 누만 끼친다는 비난은 치명적이다. 교수는 학연 등 연고주의가 유독 강한 집단이다. 정권 요직에 입성한 교수는 ‘국정철학 공유’라는 미명 아래 ‘끼리끼리 철벽’부터 쌓으며 인재 영입을 원천 봉쇄한다. 박 정부 때 경제부총리, 정책조정수석, 경제수석직을 독차지한 ‘위스콘신 동문’이 단적인 예다.

학생에게 주는 악영향도 심각하다. 며칠 전 만난 한 교수와 대학생들의 전언을 옮겨본다. “학기 중에도 그들의 시선은 늘 여의도를 향한다. 엄격한 강의 평가와 연구업적 관리, 학생 감시 때문에 결강은 거의 없지만 강의는 건성이다. 학기 말엔 수업시간을 학생 발표로 때우기 일쑤다. 캠프 회동이 있는 날 즈음엔 스마트폰을 자주 기웃대는 바람에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진다. 출석 체크도 대충하고 시험문제도 대강 낸다. 강의 중 특정 후보를 치켜세운 적도 있다.”

교수의 본분은 연구와 교육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일(敎) 못잖게 기르는 일(育)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폴리페서에겐 ‘교’만 있고 ‘육’은 없다. 학생은 교수를 ‘인생의 멘토’로 삼지만 그들은 학생을 ‘학원의 수강생’쯤으로 여기는 투다. 그들은 ‘미력하나마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 운운하며 유력 후보 캠프에 발을 담근다. 그러나 정작 제자들을 사회 변혁의 주역으로 키우는 일이 진정한 애국의 길임을 애써 외면한다.

폴리페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정립해야 할 때가 됐다. 교수가 한자리할 욕심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든다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청년실업난이 극심한 지금 대학을 폴리페서 프리존(청정지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규제프리존법’처럼 ‘폴리페서 프리존법’을 제정해야 한다. 교수들이 정치활동을 하거나 정무직·선출직에 나서면 즉각 사표를 수리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절규하는 제자 취업엔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의 취업에만 혈안이 돼 있는 교수는 스승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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