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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28일(金)
홀로코스트 作家가 ‘또다른 시선’으로 본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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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슈비츠의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는 1945년 고향인 이탈리아 토리노로 돌아가 198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폭력성과 한계를 성찰한 글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연합뉴스

릴리트·지금이 아니면 언제? / 프리모 레비 지음, 한리나·이현경 옮김 / 돌베개

진실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기본적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그것이 20세기 인류 최악의 비극인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소재로 했다면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올해 30주기를 맞은 프리모 레비(1919∼1987)는 현대 증언문학의 대표 작가다. 이탈리아계 유대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유대인의 참상을 고발하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을 펴냈다. 나치와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레비’와는 뗄 수 없는 키워드였고, 레비는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인간 본성에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번역된 ‘릴리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비의 또 다른 시선과 작가적 상상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릴리트는 1981년 발표한 단편집이다. 36편으로 구성됐다. 한 편의 분량이 10쪽 안팎으로 매우 짧은 소설이다.

우선 구성면에서 초기 작품과는 다르다. 레비는 36편을 가까운 과거(1부), 가까운 미래(2부), 현재(3부)에 나눠 담았다. 흔히 ‘과거-현재-미래’로 배치되는 시간 순서와 차이를 뒀고, 굳이 ‘가까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단편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이유가 짐작된다. ‘체사레의 귀환’ ‘로렌초의 귀환’ 등은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배어 있다. 체사레와 로렌초는 레비가 수용소에서 만났던, ‘이것이 인간인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다른 시선을 담았다고 하지만 레비 기억의 출발은 아우슈비츠이고, 아우슈비츠는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주 가까운 과거인 셈이다.

표제작도 1부에 속해 있다. 릴리트는 유대 신화에 구전으로 전하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원래 아담의 짝이었으나 신에게 저주받아 떠도는 존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비에게 릴리트는 편견과 선입견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의 삶을 대변한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은 2부에서다. ‘이종교배’에서 동물과 식물의 교배라는 공상과학적 스토리가 펼쳐진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이종교배와 이식에 몰두하는 현대과학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열기’에선 ‘팰린드롬(Palindrome)’ 같은 언어유희가 시도된다. 팰린드롬은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문자열을 이루는 회문(回文)을 말한다. 이질적이면서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다.

3부에선 토리노대 화학과 출신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화학자로서의 분석적 시각과 함께 여전히 나치즘의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레비가 ‘과거-미래-현재’로 시간을 배치한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는 결국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모두 모이는 시간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1982년에 발표한 장편 ‘지금이 아니면 언제?’도 기존의 증언문학적 성격을 넘어서는 소설이다. 레비 스스로가 “자전적 성격이 아닌 진정한 첫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설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와 대항해 싸우는 러시아·폴란드계 유대인들의 유격전, 그리고 이들이 러시아에서 동유럽을 거쳐 귀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레비의 전작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나치의 비인간적 폭력과 그에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한 수동적 이미지의 유대인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적극적이고 활달하며 활력이 넘치는 유대인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선의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나치,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여전히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본질과 선악, 폭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 레비의 작업은 이번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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