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빛’이 왔을 때 당신은… ‘돈’ 세기를 계속할 건가, 멈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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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② 나, 나 말인가요? -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부름’

자연은 3월에서 5월 사이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나 자주 나오는 안국동 부근의 화단에서 아니면 학교 안을 거닐 때면, 하루가 다르게 나무와 꽃이 자라나고 지는 것을 본다. 얼마 전까지 진달래와 목련 그리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니, 요 며칠 사이에는 등꽃과 라일락이 피어 있다. 등꽃은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어 보기에 좋고, 라일락은 그 향기가 그윽하다.

# 돈을 세다

여기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년)가 그린 그림 하나가 있다. ‘성 마태오의 부름’(1599∼1600년·그림)이다. 이것은 그가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를 위해 그린 세 가지 그림 중 하나다. 다른 두 개는 ‘성 마태오와 천사’ 그리고 ‘성 마태오의 순교’다. 이 교회는 원래 로마에 살던 프랑스인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가 그린 거의 모든 그림이 그러하듯이, 이 그림 속 인물도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아래, 마치 연극 속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드러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병든 바쿠스’(1593∼1594).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방 왼쪽으로,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이 탁자 둘레로 다섯 남자가 앉아 있다. 다섯 사람 가운데 왼쪽 두 사람은 동전을 세고 있다. 머리가 희고 안경 낀 사람은 어떻게 돈이 세어지는지 살피고 있다. 이 노인은 흔히 빚쟁이로 해석된다. 그는 얼마나 집요한가? 신이 부르는데도, 왼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돈을 제대로 계산하는지 검사하듯 골똘하게 쳐다본다. 그는 재화에 사로잡힌 ‘맹목성’을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화면 앞쪽 젊은이는 고개를 숙인 채 동전 세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오른손으로 동전을 세면서 왼손으로는 그 주머니를 꽉 쥐고 있다.

탁자 중앙의 수염 난 인물 - 베레모를 쓴 채 왼손으로 가리키는 사람은 ‘마태오’로 알려져 있다. 마태오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옆 노인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오른쪽에서 비쳐드는 빛이 그의 이마를 정중앙으로 비춘다. 아마도 이 마태오가 제목이 알려주듯이 그림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에 반해 앉은 사람들 가운데 오른쪽 두 사람은 고개를 돌리며 오른쪽을 바라본다. 이 두 명은 돈 세는 왼쪽 사람과 같은 옷차림이다. 이들은 세무서를 지키는 호위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마도 마태오의 세금징수 일을 보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태오와 세 젊은이는 동료인 셈이다.

그중 가슴을 정면으로 보이는 호위병의 모자에는 깃털이 달려 있다. 얼굴은 앳되고 그 복장은 화려하다. 그에 반해 다른 한 군인은 칼을 찬 채, 등 돌린 모습으로 앉아 있다.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이는 예수다. 그의 머리나 어깨는 짙은 어둠에 묻혀 있고, 목 아래부터 몸 전체는 옆에 서 있는 사람, 베드로에 가려져 있다. 베드로는 ‘마태오가 여기에 있다’면서 알려주는 듯이 오른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킨다. 이렇게 가려진 채 예수는 손을 들어 탁자의 무리를 가리키며 호명한다. 마태오, 너는 어디 있느냐? 마태오, 너는 지금 무엇을 하느냐? 이렇게 그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 빛줄기 - 신의 부름

‘마태오의 부름’에 등장하는 방에는 장식이 없다. 아무런 그림도 걸려 있지 않고,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에는 잔뜩 먼지가 끼어 있다. 창문은 열려 있지만, 벽으로 막힌 듯이 보인다. 이 황량한 방 안으로 빛이 오른쪽에서 비쳐든다. 과연 그리스도가 서 있는 곳도 이쪽이다. 빛이 오는 곳에 그가 있을 것이다. 빛줄기는 그의 머리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선을 그으며 내리비친다. 이 빛의 방향에 따라 우리의 시선도 따라간다.

그림에서 묘사되는 사건의 중심에는 오직 한 가지, 돈을 세는 일이 있다. 이 일을 직접 하는 것은 마태오와 맨 왼쪽 청년이다. 그리하여 돈을 세는 두 손은 이 두 사람의 것이다. 특히 고개 숙인 청년은 동전을 세고 또 세는 것처럼 보인다. 탁자에는 흔히 그러하듯이 주사위나 카드도 없다.

‘성경’에 의하면, 이 신비스러운 호명이 일어난 곳은 식당이나 도박장이 아니라 세무서다. 이 세무서는 소금 세를 징수하는 곳이다. 여기에 그려진 탁자나 의자 또한 벽이나 창문처럼 궁색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이 성서적 사건은 어떤 신화나 별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난 평범한 사건이 된다. 신의 기적은 일상의 삶과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림의 무게중심은 오른쪽으로부터 비쳐드는 빛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른편 위쪽에서부터 아래편 탁자 쪽으로, 그 둘레에 앉은 모든 사람들 쪽으로 직진하듯 비쳐든다. 빛은 결코 산만하거나 장황하지 않다. 마치 신의 전언처럼 그것은 일관되고 무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빛의 초점은 마태오와 앳된 군인 그리고 안경 낀 노인의 얼굴이고, 나아가 동전을 세고 있는 손등이다. 이 가차 없는 빛의 투사(投射) 속에 예수는 서 있고, 그의 눈빛은 매섭다. 그는 손을 들어 마태오를 부르며, ‘너의 삶을 바꾸고 내 제자가 되어라’고 말한다. 예수의 이런 부름에 마태오는 왼손을 들어 ‘나, 나 말인가요?’라고 되묻는 듯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모든 표현적 과잉을 자제하면서 너무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인간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 하는 일로부터 무엇에 응답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다. 이 그림에서도 나타나듯, 예수가 부를 때 쳐다보는 것은 다섯 인물 가운데 세 명이다. 그러나 세 명 가운데 마태오만 손을 들어 자신 혹은 그 옆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를 따라갔다고 되어 있지만(마태, 9장 9절), 지금의 모습은 확신에 찬 것은 아니다.



# 사물들의 속삭임

신이 부르는 것은 그림 속의 마태오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보고 있는 관찰자 - 우리 혹은 나일 것이다. 그러니 물음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실이나 세상은 물론이고 나 자신마저 나에게 낯설 때가 많다. 주변의 사물들은? 이 역시 강고한 타성 속에서 그게 그것인 듯이 나는 매일 보고 들으며 산다.

늘 지나가다 보면서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던 나무가 학교 마당에 한 그루 있었다. 지난주에는 마음을 먹고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그것은 박태기나무였다. 꽃이 밥알 모양이어서 ‘밥티나무’라고도 하고, 북한에서는 그 봉오리가 구슬 같아서 ‘구슬꽃나무’로 불린다고 한다. 이름을 알게 되니, 그래서 무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다음부터 이 박태기나무 옆을 지나칠 때면 좀 덜 미안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주 보는 나무 한 그루의 이름을 알아보는 데도 4∼5년이 걸렸으니, 주변 사물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아는 데는 과연 몇 번의 생애가 필요할 것인가?

나무와 꽃, 땅과 바람과 하늘은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사물에 ‘말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관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말이 없을 뿐, 자연의 사물들은 저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소곤대고 중얼거리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소리, 그 나직한 속삭임이야말로 자연의 몸짓이며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침묵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굳어버린 감각과 정신과 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맥경화증처럼 감각과 정신의 경화증도 있을 것이다. 싹이 나고 잎을 틔우며, 그 잎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것은 식물의 전언(傳言)일 것이다. 그렇듯이 잎과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비와 햇볕에 열매를 맺으며, 그렇게 익어가다가 늦가을 찬바람에 그 잎이 시들어가면서 이윽고 하나씩 떨어지는 것은 그 나름의 송신(送信) - 말을 잊은 것들이 무언의 말로 속 깊은 기호를 내보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300여 년 전 스피노자는 ‘신의 물질성’ 혹은 ‘물질과 정신의 동등성’을 말한 적이 있지만, 굳이 이것이 아니더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사람이건 사물이건, 어떤 메시지가 들어있다. 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나는 내 삶의 조건을 잠시 돌아본다.



# 무엇에 응답할 것인가

카라바조는 전통적 회화 규범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혁신시킨 서구 회화사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만큼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화가도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꽃과 잎과 과일을 그릴 때도 그는 놀랍도록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시든 포도잎이나 벌레 먹은 사과를 꺼리지 않았다. 그림의 소재도 제한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지나 카드 놀이꾼, 매춘부나 사기꾼도 그의 그림에 등장한다. 일상적 장면이든 종교적 소재든, 그는 시대의 유행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묘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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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차 없는 현실주의 때문에 많은 주문자들이 카라바조의 그림에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작품 구입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는 그림값을 제때 못 받아서 자주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는 1606년 말다툼 끝에 상대를 죽인 후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 후 로마에서 도망친 뒤 포르토 에르콜레 해변에서 죽어간다.

삶의 곳곳에 말 없는 목소리와 크고 작은 몸짓과 표정들이 있다. 이 사물들에 응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소극적으로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세속적 재화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이고, 적극적으로는 신의 소명에 나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름에 답하는 가장 평이하고 일상적인 방식은 그저 귀 기울임, 그리하여 주변을 잠시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사랑도 이 귀 기울임에서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어려워 보인다. 오늘날의 상품사회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저 400년 전의 카라바조 그림에서처럼, 돈을 세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돈을 세고 또 세고 또 센다. 우리는 매일 찬거리를 마련해야 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장을 봐야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아드는 고지서를 확인해야 하고, 아이들 등록금이나 학원비를 계산하며 수지를 맞춰가야 한다. 삶의 평생 동반자는 ‘영수증’이지 ‘진리’나 ‘평화’가 아니다.

하지만 돈 세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주변의 사물에 적어도 가끔은 눈길을 주는 일이다. 눈길을 주면서 그 사물을 살펴보고 그 말 없는 전언에 잠시 귀 기울이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에 눈과 귀를 열어둘수록 우리는 신성(神性)에 더 가까이 다가갈지도 모른다.

자연의 말 없는 사물에 다가간 삶이 적어도 얄팍하고 비틀린 삶은 아니 될 것이다. (문화일보 4월 11일자 25면 1 회 참조)

충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