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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04일(木)
가부장제를 벗어던진 惡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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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재구성 / 홍나래·박성지·정경민 지음 / 들녘

우리 고전 서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충효와 가부장제의 유교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현모·양처·열녀·효녀가 그 한 범주이고, 거기에서 일탈한 악녀(惡女) 혹은 음녀(淫女)가 또 다른 범주다. 고전 서사 속에 여성이 등장하는 텍스트가 많지 않지만, 그조차도 문자 권력을 쥔 지식인 -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시선으로 재단되고 걸러져 남겨졌다. 그런데 공동체 속에서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되다 문자로 정착된 이야기에는 아무리 당대의 틀에 동여매도 가릴 수 없는 민중의 속마음, 욕망이 담겨 있다. 거기서 문학의 힘을 보기도 하고, 고전문학 연구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이화여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20여 년간 동문수학해온 세 고전문학 연구자는 여러 설화집의 서사 속 ‘악녀’를 다시 불러낸다. 그들의 서사를 뒤덮고 있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더께를 한 꺼풀씩 걷어내, 당연히 그들이 가졌을 생명으로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욕망에 접근한다. 그 더께는 모성(母性), 열녀(烈女), 양처(良妻)라는 이데올로기 등이며, 이를 넘어 자기실현의 한 주체로 우뚝 서고자 했던 여성들의 욕망을 다시 구성해 보여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구로 유명한 양사언의 어머니는 정사(正史)에서는 3형제를 출세시킨 ‘모성의 화신’이다. 하지만 설화에서 그녀는 변방의 평민 출신으로, 우연히 집에 들른 지체 높은 양반(양희수)의 눈에 들어 첩이지만 양반가에 입성하는 데 성공하고 자식들을 잘 키웠다. 극적인 것은 양사언의 어머니가 아들을 적자로 인정받게 하려고 남편의 관 앞에서 자결한다는 점이다. 양사언은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적자의 지위를 얻는다. 하지만 그것이 다일까? ‘모성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면 그녀의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자결로써 아들에게서 서얼의 흔적을 지우고 그녀는 ‘양반의 어머니’로 남았다.

▲  북한 소재 고구려 벽화무덤 ‘안악3호분’에서 발견된 여인의 벽화. 이 여인은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남편을 선택해 왕으로 세우며 완벽하게 주체적 삶을 산 우리 역사 속의 대표적 인물인 우 황후로 추정되기도 한다. 자료사진

‘열녀 이데올로기’를 비웃는 ‘사방지’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남아 있다. 세조 대의 실세였던 이순지의 딸은 과부가 된 후 사방지라는 양성인(兩性人)의 혐의를 받는 노비에게 여자 옷을 입혀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맺는 전무후무한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사대부 연인들이 간통하면 중형을 받던 시절이었지만, 신분 질서를 어지럽힌, 더구나 지금 시각에서도 ‘도착적인’ 이 사건에서 사방지는 무사했다. 이순지의 딸은 아버지와 아들 등 가문 전체의 불명예를 감수하고 사방지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호했다. 자신의 욕망에 집요하고 솔직했던 것이다.

한명회의 후처 이 씨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의 한순간 노리개로 끝날 수 있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쟁투로 부인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녀는 집에 들른 세조 앞에서 처첩제의 불합리성을 호소하고 정부인과 정경부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대담하게 요구해 결국 세상으로부터도 신분을 인정받았다. 고구려 우 태후는 남편인 고국천왕이 죽은 후에 서슴지 않고 시동생 연우를 왕으로 옹립하고 그의 비(妃)가 돼 권력을 장악했다. 다시 아들이 없는 결함을 딛고 동천왕의 태후가 돼 권력을 재창출했다.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남편을 선택하고 왕을 세우며 완벽하게 주체적 삶을 살았다.

책에 소개하는 ‘덴동어미화전가’에 등장하는 덴동어미는 ‘민초’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욕망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될 ‘상부살’을 타고난 덴동어미는 네 번 결혼했고, 남편들이 모두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며, 하나 남겨진 아들마저 불에 데어 ‘덴동이’기 됐다. ‘내 팔자가 이러하네’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전부다. 여기에 죄책감과 무기력감이 담길 만하지만, 그녀는 찌들거나 궁상맞은 구석이 없다. 오히려 여인들이 몰려나온 화전놀이에서 누구보다 발랄하게 잘 논다. 저자들은 “‘여성 주체성’은 근대 이후,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고서야 가능한 말이 아니다. 전근대에도 여성은 온갖 억압에도 자기 삶을 개척해내는 굳건한 내면과 이를 표현해낼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며 “우리에게 그들의 소리를 들을 귀가 없었을 뿐이다. 그들은 ‘주체성’이라고 말하지 않고 ‘복’이나 ‘팔자’라고 했다”고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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