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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17일(水)
“출판 外 유혹에 안 빠지려 愚公移山으로 만든 것이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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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이 지난 12일 경기 포천 나남수목원 내의 책박물관 2층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38년간 출판을 하게 해 준 분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 박물관을 지었다”고 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조상호 나남출판·나남수목원 회장

그와의 대화는 책과 나무를 왔다 갔다 했다. 책 이야기인가 하면 나무 쪽으로 넘어갔고, 나무 이야기는 책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우정에 관한 회고가 깃들었다. 조상호(67) 나남출판사 회장. 38년간 책을 만들어 온 그는 명실공히 국내 대표적 출판인이다. 그가 지난 2008년부터 나남수목원을 가꾸고 있다고 한다. 경기 포천시 신북면 산비탈 66만여㎡(20여만 평)의 땅에 나무를 심어 왔다. 그 안에 지난 4년간 ‘책 박물관’을 지었고, 오는 20일 개관식을 연다.

조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남수목원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일단 출판사로 오라고 했다.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나남출판사에서 수목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안내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출판사 4층에 있는 회장실을 찾았다. 알려진 대로, 그의 사무실은 널찍한 ‘쇼룸’이었다. 각종 책뿐만 아니라 화분과 서예, 그림, 조각들이 저마다의 향기와 품격으로 주인의 안목을 뽐냈다.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랬어요. 신문방송학과 아이들이 와서 보면, 출판을 해도 이 정도 꾸미고 살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쇼룸이 필요하다고.”

나남은 언론 관련 출판으로 유명했다. 한때 전국 대학의 신방과 커리큘럼은 나남 책 아니면 꾸릴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 인터뷰에 동행한 김인구 출판담당 기자도 “신방과 학생 때 나남 책을 봤다”고 했다. 조 회장은 “그 덕분에 내가 먹고 살았다”며 크게 웃었다.

나남은 그동안 3500여 종의 책을 펴냈다. 사상의 저수지를 표방한 ‘나남신서’만 1919권째 내놨다. 사회과학서 출판에 힘썼으나 문학 작품들도 많이 출간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이 시장에서 성공했습니다. 그걸로 사회학자들의 책을 내는 토대를 마련했어요.”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최근 소설 ‘강화도’를 나남을 통해 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 과학과 문학을 함께 담은 저수지 역할을 넉넉히 해 온 덕분일 것이다.

“출판을 하면서 항상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나는 저수지 맨 밑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낮은 곳에서 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그럼 거기에 연꽃도 피어나고 사람도 지나가는 거지요.”

그는 달변이다. 문어 투의 유장함과 사투리 억양의 친근감이 조화를 이뤄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글은, 말보다 훨씬 유려하다. 40년 가까이 남의 글을 봐 온 공력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칠순(七旬)을 앞둔 요즘도 원고 교정을 직접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 언론학자는 “조 회장에게 문장 빚을 안 진 학자가 없다. 더 정확해지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에 그가 손대는 것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출판저널리즘을 일관되게 지향해왔다.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려고 애써왔다.

“책 장수라고 저잣거리 일에 침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적 어젠다를 세팅합니다. 언론은 매일 어젠다를 제시하지만, 우리는 좀 늦게 하는 것이지요. 이 일을 일제강점기 36년보다 더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들의 보살핌 덕분이에요. 책 장수를 하는 보람은 사람이 남는다는 것이에요.”

조 회장이 한국 지성계의 마당발이라는 것은 유명하다. 그의 저서 ‘언론 의병장의 꿈’과 ‘나무 심는 마음’을 보면 그의 교우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 수 있다. 그는 사람 자랑을 감추지 않는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과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우리가 펴낸 계간지 ‘사회비평’ 편집위원이었어요.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친구지요. 출판 덕분에 3개 대학 총장과 다 통하는 사람이 됐으니….”

그는 나남수목원에 책 박물관을 지으면서 선후배들을 위한 ‘아카이브’를 마련했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동익 씨와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1, 2호로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김 씨는 그의 오랜 바둑 친구이며, 오 교수는 20대에 군대에서 만난 후 평생 우정을 나눠온 사이다.

그는 SUV를 직접 운전해 수목원으로 가는 길에도 후배 자랑을 했다. 김승현 고려대 교수는 그에게 클래식을 듣는 방법을 알려 주며 진공관 앰프를 구입해 설치해 주고 클래식 CD를 선물했다. 나남 초대 주간을 지냈던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를 지금도 ‘형’이라 부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조 회장이 운전하는 차에 동승해서 포천의 수목원으로 가다 보니, “KTX를 타고 1시간씩 눈 호사를 즐긴다”는 그의 말이 실감 났다. 차가 막히지 않는 교외 도로를 달리며 산야의 사철 풍경을 눈에 담으면 KTX 여행보다 나을 것이다. 매주 한 번씩 나무를 만나러 가는 그의 여정이 부러웠다. 그의 친구들도 그렇다고 했다. “누구나 가슴에 고래가 있으니까,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로망은 대부분 땅을 파고 물을 주는, 힘들고 거친 일을 건너 뛴 것이기 쉽지요.”

수목원 입구는 진입로 공사로 다소 어지러웠다. 이 길이 정비되면 사람들의 방문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여기로 오는 도로들이 때맞춰 뚫리고 있어요.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6월 30일 개통되고, 제2 외곽순환도로도 5년 뒤에 생깁니다.”

수목원 안내 건물에서 그는 손수 ‘다방 커피’를 타서 내 왔다. 사진 기자뿐만 아니라 취재 차량 기사도 대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 싶어하는 그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몸짓에서 우러나는 따스한 정감에 이끌려 모두들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었다.

“이게 내가 글에서 소개했던 히어리 나무입니다.(그는 최근 한 신문에 쓴 칼럼에서 토종 히어리의 노란 꽃이 상징하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건 눈주목인데, 아이(eye)나 스노(snow)의 눈이 아니고 누워있다는 뜻의 눈이에요. 저기 모란은 김영랑 시에 나오는 그 꽃이고, 여기 백송은 헌법재판소 뜰에 있는 바로 그 나무입니다.”

그는 책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그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했다. “회화나무는 창덕궁에서 봤을 테고, 저기 저 나무는 뭔지 알아요? 칠엽수라고, 저 나무 아래서 연애들을 하는데 마로니에라고도 해요. 여기 구상나무는 전나무라고도 하는데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는 것이지요.”

책 박물관은 수목원 3분의 1 지점에 있는 작은 호수를 앞에 두른 3층 건물이다. 인테리어 비용만 4억 원 이상 들었다고 한다. 1층 북카페 디자인부터 세련된 멋을 풍긴다. 갤러리로 꾸민 2층의 벽면 서가엔 나남 책들이 들어가 있다. 조 회장은 여기에 자신이 보물 1호로 꼽는 백제금동대향로 실물대 복제품을 갖다 놨다. 24년간 출판사 사무실에서 그를 지켜보며 격려해 준 수호천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보 287호인 이 대향로에 새겨진 봉황의 웅자(雄姿)를 관람객들이 깊게 새겨주길 바란다고 했다.

향로 옆 벽에는 조지훈 시인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한글 서예 족자가 걸려 있다. 나남이 지훈상을 운영하고 있는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역시 그의 사무실에 있던 걸 옮겨왔다.

“김난희 여사는 올해 95세인데 몸이 조금 불편하시지만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라고 해요. 지훈 선생이 49세까지 사셨는데, 그만큼의 세월을 더 사시며 후손들을 돌보셨지요. 셋째 아들(조태열)이 유엔대사까지 됐으니 더 이상의 원이 없을 거예요.”

3층 아카이브 공간까지 자세히 소개한 후에 그는 말했다. “사설로 이걸 만들려니까 소방안전 규정 등 복잡하게 지켜야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기어이 만들기는 했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거예요. 미친 짓이지….”

자랑을 겸한 탄식은 수목원 위쪽에 자리한 반송(盤松) 숲에서도 이어졌다. “3000그루의 반송 머리를 깎느라 작년 1년을 다 보냈어요. 12제자가 아니라 3000명의 자식이지요. 우면산 사태가 났던 2011년 홍수 때 그때까지 가꾼 숲이 다 무너져내렸어요. 그걸 다시 일으켜 이런 걸 만들었어요. 우공이산(愚公移山)이지요.”

우공이산의 결과로, 이 산에는 각종 나무들이 어울려 크고 있다. 무궁화 600그루(120종)와 은행나무 600그루, 아로니아 500그루, 헛개나무 300그루….

출판에만 전념했던 그가 수목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책을 만들면서 종이가 되는 나무에게 죄스러워서였을까. 그는 이런 시각에 손사래를 쳐왔다. 그 직접적 계기는 파주 적성의 임야 4만9586㎡(1만5000여 평)를 어쩔 수 없이 갖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 파주 금촌에 책 창고를 신축할 때 은행 대출을 받으며 부실채권인 땅을 떠맡게 된 것. 땅을 그냥 둘 수 없어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었지만 모두 죽었다.

“이후에 국내외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나무 공부를 했어요. 독학이지요. 그렇게 나무를 키우던 적성면 임야에 개발이 이뤄져 도로가 생기게 됐어요. 그래서 개발이 안 되고 온전히 나무를 가꿀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여기 온 것이지요.”

그가 수목원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은, 출판 이외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정치 권력 쪽으로부터 간간이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내가 출판 쪽에 너무 많은 씨를 뿌려 놓은 상태였어요. 그게 아까워서 움직일 수 없었지요. 부르려면 진작 부를 것이지…, 하하!”

그는 반송 숲 앞의 정자 인수전(仁壽殿)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지구에 잠시 소풍 왔다 가는데, 뭘 싸 가지고 갈 것도 아니지 않은가요. 나무는 늠름하게 커 가면서도 스스로 욕심 부리지 않고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습니다. 남은 생애는 자연의 일부인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 = 장재선 문화부장 jeijei@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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