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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17일(水)
保守, ‘내 탓’ 참회가 새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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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한명숙 전 대표 76.3점, 이해찬 전 대표 72.3점, 박지원 전 원내대표 67.2점, 문재인 전 대선후보 66.9점, 문성근 전 대표대행 64.6점.’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한상진 서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대선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당원들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점수화한 보고서를 발간해 파란을 일으켰다. 막연한 책임이 아니라 점수로 그 정도를 나타낸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당시 문 후보를 겨냥해서도 ‘정치역량과 결단력 유약’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보고서 채택을 두고 논란을 벌였지만 문 대통령이 재수 끝에 당선된 것은 이런 반성이라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지 8일이 지나가지만 자유한국당에선 ‘내 탓’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홍준표 전 후보는 다 죽어가는 정당을 이렇게 살려낸 것이 누구냐고 당당하고, 당 지도부는 존재감이 없다. 역대 최대인 557만 표 차이로 패배하고도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열정조차 없다. 그 흔한 워크숍도 하겠다는 얘기가 없으니 식물정당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으로 휴식차 떠난 홍 전 후보는 페이스북에 “귀국하면 신(新)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겠다”며 사실상 당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홍 전 후보가 재건하겠다는 신보수주의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반성도 책임도 없는 정당에서 보수주의도 제대로 못 하는 판에 신보수주의를 운운할 자격조차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복기해 보면 한국당은 사실상 대구·경북,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 지역 전 연령대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시골 보수’ ‘노인당’으로 전락했다. 24%를 얻긴 했지만 전통 보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는 2등도 못하고 3등에 그쳤다. 문 대통령이 총 175개 시·군·구에서 선두를 차지한 반면 홍 전 후보는 규모가 작은 경북 등 75개 시·군·구에서만 선두를 차지했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1577만 표를 얻은 반면 이번에 홍준표, 유승민 후보가 얻은 표는 1006만 표로 산술적으로만 봐도 5년 만에 571만 표가 보수에서 이탈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까지 부른 보수 정당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 탓이 절대적이지만 홍 전 후보를 ‘보수의 대표’로 여기지 못한 정서도 작용했다. 한국갤럽이 선거가 끝난 뒤 유권자들을 상대로 홍 전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은 이유를 설문조사해 본 결과 ‘말을 함부로 한다(20%), 적폐세력(19%), 대통령감이 아님(10%), 부정부패(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80년이 넘은 영국의 보수당이 지금도 집권당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유연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보수당을 연구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보수당은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신해 왔다. 보수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것을 보존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어떤 때는 다른 정파보다 더 급진적 개혁을 이끌었다. 최초의 유대인 총리, 최초의 여성 총리를 배출한 것도 보수당”이라고 분석했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진보세력이 강한 가운데도 보수가 국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해왔기 때문이다.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정치지형을 변화시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뉴라이트의 사상적 기반 속에 ‘선진화’ 담론을 제시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진보의 가치를 과감히 차용해 결국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에 한국당은 그 어떤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들이 징계한 친박 핵심과 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의원들까지도 화합이라는 미명으로 당원권 정지를 해제해버리는 참사를 저질렀다.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무능하기까지 한 보수의 재건은 요원하다. 그저 문재인 정부의 실수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내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다면 큰 착각이다. 진보 진영은 안희정, 이재명, 김부겸, 박원순 등 잠재적 주자가 즐비하다. 지금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민주당 보고서보다 10배, 100배 혹독한 참회다. 이런 와중에 당권을 잡겠다고 친박, 친홍(親洪) 싸움을 시작하고 있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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