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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하재근의 TV세상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17일(水)
터널, 한국 장르물의 새 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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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1980년대 화양시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박광호(최진혁) 형사가 1986년에서 2016년으로 시간이동을 해 다시 연쇄살인 범죄와 마주한다는 설정의 드라마다. 케이블 채널 OCN의 작품인데, 14회 시청률 6.3%로 OCN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등에 비해 채널 인지도가 매우 낮은 OCN 드라마치고는 엄청난 수치다. 시청자에게 작품 완성도를 인정받았다는 뜻인데, 그런 완성도를 보고 일본 쪽에서 판권을 사 가기도 했다.

‘터널’의 일본 진출이 화제를 모으는 건, 이 작품이 ‘장르물’이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는 그동안 멜로,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였기 때문에 장르물의 진출이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장르물은 대체로 범죄수사물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장르는 다양한 종류의 극을 포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특정 드라마만 장르물이라고 하는 건 이상한 용법이다. 멜로나 막장드라마도 모두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특정 장르만 콕 찍어 장르물이라고 하는 건, 기존 한국 드라마의 장르 구분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는 과거에 ‘모든 드라마의 멜로화’를 실현했었다. 수사물은 경찰서에서 연애했고, 법정극이나 의학극에선 법원과 병원에서 연애가 이루어졌다. ‘기승전 멜로’의 구조 속에서 러브라인 경쟁력이 날로 탄탄해졌고 한류 전성기라는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우리 안방의 젊은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 염증을 느끼게 됐다. 바로 그때 미국의 ‘CSI’ 같은 수사 장르물이 들어왔다. 미국드라마에선 형사들이 놀랍게도 연애를 안 하고 범인만 잡았다. 러브라인 구축에 공을 들이는 대신에 사건 해결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했다. 묻지마 ‘사랑타령’으로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한국 드라마에 비해, 장르 고유의 문법에 충실한 미국 수사극에 젊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그러면서 범죄수사극을 장르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멜로 코드로 일원화된 건 방송사 제작진이 ‘멜로 덕후’여서가 아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국민 여러분’이 멜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좋아하는 걸 방송해야 시청률이 올라간다. 그래서 국민 일반을 상대하는 지상파 방송사는 본격 장르물 편성에 몸을 사린다. 케이블 채널은 국민 일반이 아닌 특정 시청자층에 집중한다. 특히 몇몇 케이블 채널이 집중하는 젊은 시청자들은 미국 수사극에 열광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케이블 채널이 장르물의 견인차가 됐다.

tvN, OCN 등은 그동안 장르물에 공을 들였다. tvN에선 ‘시그널’ 같은 대형 히트작이 나왔고, OCN은 ‘나쁜 녀석들’ ‘보이스’ 등을 통해 역량을 축적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터널’이 나온 것이다. 처음엔 기존 장르물의 아류작이란 우려가 있었으나, 이내 압도적인 완성도로 한국형 장르물의 정점에 우뚝 섰다.

한국형 장르물은 잔혹함을 조금 줄이고 그 자리를 휴머니즘 코드로 채운다. 시청자는 긴장과 감동을 함께 맛보며 극에 빨려든다. ‘터널’은 특히, 휘몰아치는 전개의 속도감과 시간이동 설정의 영리한 활용으로 ‘터널 폐인’을 양산해냈다. 이 작품의 인기로 OCN의 차기작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tvN에 이어 OCN이 드라마 왕국 지상파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케이블 채널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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