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개혁, 시스템이 문제다>대법관 후보추천위에 외부인사 늘려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朴 재판 방청권 응모 열기 오는 23일 열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정식 재판을 앞두고 시민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회생법원에서 진행된 방청권 추첨식에서 응모권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⑤ 중앙집권화하는 법원 조직

서울대·50대男·판사출신 임명
법조인들이 추천해 다양성 부족

추천위, 대법원장 눈치 안보게
독립적인 의결기구로 만들어야

憲裁의 독립·전문성 강화 위해
재판관 3명 非법조인 지명 검토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사법부 쇄신’에도 의지를 밝힌 만큼, 향후 대법원·헌법재판소 등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조직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사법부 개혁을 주도하는 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에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지는 않지만, ‘정운호 게이트’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압박’ 등 전·현직 판사들이 관여된 논란이 큰 이슈였던 만큼 사법 개혁의 필요성에 대다수 법조인과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 중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과 헌법재판관 8명이 임명되는 등 막강한 사법기관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는 만큼, 사법개혁 역시 검찰개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평가다.

◇“사법부의 구성원 다양화, 최우선 추진 과제” = 일단 문재인 정부는 중앙집권화된 법원 조직을 개편하고, 사법부 구성원을 다양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독립적인 대법원장·대법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의결기구화한다는 대선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또 추천위에는 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 좀 더 투명하고 다양한 사회의 의견을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추천위는 대법관과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법조인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대법관이 ‘서울대·50대 남자·판사 출신’으로 추천·임명됐기 때문에 법조계 인사로만 구성된 추천위의 천거에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최근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중 상당수가 전원일치 판결이라는 점도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추천위가 대법원장 영향력 아래에 있는 만큼,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대한변협 측은 “엘리트 법관 코스를 밟았다고 해서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하지만 판결에 다양한 가치관을 담아내는 것은 제도적으로 구현돼야 할 일”이라고 밝히는 등 정부 차원의 시스템 개혁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으로 누가 임명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19일 “대법관 추천위가 사법 쇄신을 요구하는 국민적 기대나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기관 수장 자리에 여성을 앉히겠다고 문 대통령이 공언한 만큼, 여성 대법관이 임명될 가능성도 크다. 최근 대한변협은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재야 변호사들을 대법관으로 대거 추천하기도 했다.

◇헌재 구성방식 변화도 중요 과제=대법원뿐만 아니라 헌재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독립성·전문성 강화를 내걸고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현재 헌재 소장과 재판관 지명 방식을 개선하고, 재판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명은 비법조인으로 채워 다양한 구성원을 갖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3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3명을 지명하도록 돼 있다. 이 중 대법원장이 기능적으로 분리된 헌법재판관을 임명한다는 것 때문에 ‘엄연히 법원과 다른 사법기관인 헌재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헌재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현행 체제를 고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인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임명·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추천위 등에 실질적 권한 줘야”=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추천위원회가 없고, 정부가 의지가 없어 사법개혁이 잘 안 됐던 게 아닐 것”이라며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사법 문화가 마련돼야 하고, 각계각층의 구성원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진 대법관 추천위 등 위원회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구성원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해당 조직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돼 있다면 현행 체제에서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밝힌 후보자 추천위 등의 구성 비율, 위원장 선정과 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의 표결 방식, 해당 조직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투명하게 감시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구상이 필요하다”며 “이런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 독립적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제대로 사법부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