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文대통령, ‘입법의 高手’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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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미국 시사주간지를 접하다 보면 종종 ‘everyday presidency’라는 말이 나온다. 굳이 의역하자면 ‘일상생활 속 대통령’이다. 매일매일 소소한 행동까지 미디어에 노출시켜 국민 지지도를 높이려는 정치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TV가 보편화한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 때부터 유행했다. 이 기법의 최대 수혜자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40여 년 전의 ‘카터 현상’이 요즘 한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신문이나 TV, SNS를 통해 전달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국민은 연일 환호한다. 마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사는 최고 통치자를 만난 환희의 표출이라고나 할까. ‘테이크아웃 커피, 짧은 밑단 바지, 배식 식판’ 등이 ‘문재인 표’ 감동 소품(小品)이다. 대통령의 오렌지 색 등산복과 덴마크 안경테 등도 불티나게 팔린다. ‘문템’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문 대통령의 거침없는 국정 운영과 소통 리더십도 돋보인다. 애민정책의 속전속결 집행, 파격·탕평을 넘나드는 인사, 첫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성공적 회동, 개국공신의‘낙향가’ 등은 반대자들도 호평한다. 한 전직 장관이 10년 가까이 갈아온 칼이 장난이 아니라며 놀랄 정도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의 “너무 잘해 무섭다”는 토로는 ‘서프라이즈 문재인’의 화룡점정이다. ‘용비어천가성’ 합창도 들린다. 운도 따른다. 한국경제를 좌우하는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탄다. 중국의 ‘한한령(한류금지령)’도 해빙 분위기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발등의 불이다. 18개 부처장관 내정자 청문회도 대기 중이다. 임시국회도 29일 시작된다. 배배 꼬인 나라 안팎의 매듭도 그대로다. ‘고삐 풀린 망아지’ 북핵 문제는 속수무책이다. 미·중·일 관계는 첩첩산중이다. 인구절벽과 초저금리 속 금리 상승 충격은 예고된 ‘경제 쓰나미’다.

이제 문 대통령의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다. 입법 역량이 그 핵심이다. 공약의 절반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국회 동의 없이는 일자리 창출과 검찰 개혁 등 어느 하나도 반쪽짜리다. 그러나 사방엔 장애물 천지다. 선진화법에 꽁꽁 묶인 국회는‘거부정치(vetocracy)의 결정판’이다. 여소야대 속 한 야당은 벌써 ‘실패프로젝트 가동’ 운운한다. 업무지시를 남발하면 부작용을 키우기 십상이다. 문 대통령이 ‘행정 달인’이 아니라 ‘입법 고수’가 돼야 하는 이유다. 실패한 대통령을 피하기 위한 3대 수칙을 제시한다.

먼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정한 국회 설득 리더십을 적극 펼쳐라.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국정은 윈윈 게임이다.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설득만큼이나 ‘양보와 관용’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청(國靑)관계, 구동(求同)협치 등과 같은 언어유희가 아닌 실질적 협치를 해야 한다. 공식기구 대면과는 별도로 의원들을 만나고 또 만나 경청해야 한다. 주요 개혁의 성공 여부가 향후 100일에 달린 만큼 소통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면 금상첨화다. ‘레이건식 만남’이 모범답안이다. 그는 취임 후 100일간 49차례에 걸쳐 467명의 의원을 만났다. 이들 중 일부는 전 정권 4년간 받았던 대접을 레이건정권 4개월간 다 받았다고 했다. 무턱대고 여야 의원을 만나지 않고 이들 간 친소관계를 따져본 뒤 친한 의원끼리의 소수 만남 방식을 애용했다. 의원과 그 가족까지 백악관에 초청해 팝콘을 먹으며 영화도 함께 봤다. 그런 한 야당 의원의 딸이 “우리 대통령이 최고야” 하며 아버지를 임기 내내 그의 우군으로 만들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설이다.

둘째, 공약을 3단계 정도로 추려 야당과 소통하라. 야당과 조금만 이견을 좁히면 합의 가능한 공약, 방향은 다르나 정치력을 발휘해 수정해서라도 야당 동의를 얻어낼 공약, 야당과 이념적 차이가 워낙 커 여론 지지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공약 등으로 나눠 전략적 협상을 해야 한다. 끝으로, 국민에게 감동은 물론 신뢰도 주는 내각 인선을 해야 한다. 충성심·스토리에 전문성까지 더해진 장관이 더 많이 배출돼야 한다. 임명한 장관에겐 정책 결정권과 인사권을 전적으로 위임하고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성공한 장관들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법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지만 행정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를 잘하지 않으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스승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정치권에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