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신건강, 이제는 국가가 책임진다-上>4명중 1명이 정신질환 경험 “개인 문제” 방치단계 지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새 정신건강복지법 30일 시행

유병률 OECD 평균보다 높아
정부 역할 확대 필요성 커져

20년 만에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30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그동안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과정에서 빈번했던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는 법안으로서 사회적 주목도가 높았지만, 법안의 본질은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있다는 평가다. 국민 중 25%가 평생 한 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많은 국민이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 맞춰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 책임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즈음해 3회에 걸쳐 정신건강 제도의 문제점과 법률 개정 배경 및 내용,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국민이 우울한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난달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2016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 1년 유병률은 11.9%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우울감 경험률은 평균 10.7%였지만, 우리나라는 13.2%에 이른다. 미국(9.0%), 일본(9.3%)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효과’를 우려해 치료를 받지 않거나 숨기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환자는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청년 실업, 조기 퇴직, 노후준비 부족 등 국민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불안 요소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앞으로도 정신질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가 예고된 상황에서도 그동안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노력은 저조했다. 국민이 정신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경우는 15.3%에 불과해 미국(39.2%), 뉴질랜드(38.9%), 호주(34.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신건강에 대한 지출 비용도 우리나라는 평균 44.81달러로 영국(277.78달러), 미국(272.80달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10만 명당 정신보건인력 역시 우리나라는 42.0명으로, 영국(318.9명)이나 미국(125.2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국민은 물론 정부도 정신건강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서울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 수락산 사건의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생겨난 ‘조현병 환자=흉악범’이라는 편견 역시 이런 정신건강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실제 전체 범죄 중 정신질환자에 의한 비율은 0.3%에 불과하고 조현병은 그중 극소수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10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정신건강 없이 건강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며 “‘정신건강 없는 건강’은 높은 자살률과 행복하지 않은 국민의 피폐한 삶 등으로 연결돼 국가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정신보건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