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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7년 05월 31일(水)
필리핀이 IS 기지化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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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3명까지 강간한다면,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해 줄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26일 이슬람 반군과 교전 중인 필리핀군 장병에게 한 말이다. 여성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항의가 빗발치자, 대통령궁 측은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군에 의한 반군 지역에서의 성폭행 사건이 문제 되곤 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유세 도중에도 자신이 시장이었던 다바오에서 1989년 발생한 교도소 폭동 사건 당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언급하며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4일 민다나오섬에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 이슬람주의 반군 소탕전을 시작했다. 이번 계엄령은 이슬람국가(IS) 지부를 자처하는 ‘마우테 그룹’이 인구 20만 명의 마라위 시(市) 일부를 점령하고 정부군과 대치하면서 시작됐다. 마우테 그룹이 마라위를 공격·점령한 것은 ‘동남아 이슬람주의 세력의 아미르(수장)’로 불리는 이스닐론 하피론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린 하피론은 지난 1월 필리핀군의 공습으로 부상 당한 뒤 거기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정보를 얻은 필리핀군이 은신처를 습격하자 하피론 추종세력이 강력히 저항했고, 마우테 그룹이 구원군으로 투입된 것이다.

필리핀 인구 1억 명 중 약 80%는 가톨릭이다. 그러나 약 500만 무슬림 모로족(族)이 민다나오섬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모로란 원래 스페인인들이 북아프리카 무슬림을 가리키던 말인데, 16세기 후반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같은 무슬림이란 이유로 필리핀 현지 무슬림도 모로라 부르면서 그 명칭이 굳어졌다. 모로족은 일찌감치 분리·독립운동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이다. 그러나 MNLF는 필리핀 정부와 1996년 평화협정을 맺고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 지역(ARMM)’이란 자치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MNLF의 온건 노선에 반발해서 떨어져 나온 조직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다.

그러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반소 항전에 참전했던 ‘아프간 베테랑’들이 귀국하면서 운동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아부 사야프(도검 제작자의 아버지)’가 조직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연계한 테러 투쟁이 본격화된다. 1994년 김포공항 등 동아시아 공항에서 이륙한 12편의 여객기로 자살 공격하려던 ‘보징카 작전’을 추진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알카에다가 퇴조하고 IS가 득세하면서 아부 사야프 조직 일부가 IS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남(南)라나오주(州) 이슬람국가(IS)’도 그중 하나인데, 흔히 지도자 마우테 이름을 따 마우테 그룹으로 불린다.

알카에다와 IS 전략의 차이는 알카에다는 소수 정예 조직에 의한 반미 테러투쟁을 선호하는 반면, IS는 대중 운동을 기반으로 지역 거점을 장악하고 국가조직 건설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라크·시리아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IS는 동남아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을 주목한 것은 현지 무슬림들에게 오랜 투쟁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치안 및 행정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마라위 전투가 보여준 것 같이 아부 사야프나 마우테 그룹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 등 많은 외국인이 포함돼 있다.

미국과 주변 동남아 국가들은 필리핀 민다나오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해방구’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두테르테의 계엄령과 대대적 토벌전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필리핀 주류 사회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IS 추종 과격세력을 소탕하는 것에 찬성하면서도, 계엄령 선포가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의 계엄령 철권통치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미 4000명이 생명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의 부국이자 대표적 민주주의 성공 사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때 “필리핀만큼만 됐으면” 하고 부러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필리핀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있고, 아시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국가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보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선거라는 정당한 절차로 탄생한 권력이라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선출된 전제군주(elected autocrat)’로 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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