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범 교수의 어원 이야기>호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호갱’이 된 적이 있다. ‘호갱’, 참 희한한 말이다. ‘호구’와 ‘고객’이 뒤섞인 말이라는데, 그렇다면 ‘호구와 같은 고객’이라는 뜻일 것이다. 휴대전화를 구매하다가 느닷없이 ‘호구’가 되었으니 약간은 억울하다.

‘호구’를 어떤 사람들은 한자어 ‘戶口’나 ‘護具’로 보기도 하나 이는 잘못이다. ‘호구’는 ‘호랑이의 아가리’를 뜻하는 한자어 ‘虎口’이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아가리’는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호랑이에게 물려 일단 아가리에 들어가면 용빼는 수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이렇듯 ‘호구’는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곳이니 ‘아주 위험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이곳에서는 생사가 갈리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호구’에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이라는 의미가 생겨난다. “호구를 벗어나다”와 같은 표현 속의 ‘호구’가 그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호구’는 바둑 용어로 전용되기도 한다. 바둑에서 상대방의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을 ‘호구(虎口)’라 한다. 바둑돌 석 점이 에워싼 속이 마치 호랑이의 크게 벌린 아가리 속과 같아 보인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 것이다.

‘호구’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만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호구’에 바둑돌을 놓겠는가마는 그런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호구’에 바둑돌을 놓는 바보처럼,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빗대 ‘호구’라 한다. “이 호구야 왜 그렇게 호구 짓을 하고 다니느냐?”와 같은 표현에서 그 같은 의미가 잘 드러난다. 이때 ‘호구’는 상대를 낮잡아 이르는 비어(卑語)다.

요즘도 ‘호구’라는 말이 제법 쓰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도 이 말이 나왔다. ‘호구’는 상대를 낮잡는 비어여서 공공연히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