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139) 55장 사는 것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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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김 회장님.”

방으로 들어선 김인중이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뒤를 여자 하나가 따른다. 김광도가 일어나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김 회장님, 이곳까지 내려와 주셔서 제가 영광입니다.”

50대 초반의 김인중은 3선 의원이다. 김인중이 비켜서서 뒤에 붙어 있던 여자를 소개했다.

“여기 조희연 씨, 교육재단에서 근무하시는 교육사업가시죠.”

“안녕하세요. 조희연입니다.”

여자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순간 김광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고 목구멍이 바짝 말라버린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눈이 뜨거워졌고 심장 박동이 거칠어졌다. 처음 느끼는 반응이다. 여자와 시선을 마주친 후에 일어난 현상이다.

“앉으시지요.”

둘에게 자리를 권한 김광도가 소파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선은 김인중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박힌 조희연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떠 있다. 물결치듯 파마한 머리칼이 어깨까지 늘어졌고 계란형 얼굴에 맑은 눈, 야무진 콧날과 웃음을 머금고 있지만 단정하게 다문 입술, 몸매는 날씬했지만 투피스 정장 차림의 가슴 볼륨이 풍만하다. 올해 35세라고 했는가? 40세인 김광도와 어울리는 나이다. 아니, 김광도가 벼락출세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방대 출신으로 서울 일류대 석사까지 딴 조희연을 감히 바라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노련한 김인중이 눈치를 채고는 제 공치사를 하느라고 한바탕 혼자 떠들더니 밖으로 나간 것은 10분쯤이 지난 후다. 그동안 건성으로 말대꾸하던 김광도가 김인중을 문 앞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와 앉았다.

“전 김 의원님이 회장님 소개시켜 주신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어요.”

조희연이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결혼할 생각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한 말이고 자연스럽다. 김광도의 얼굴에도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기회는 무슨, 과대평가 말아요.”

“아니죠. 객관적인 평가예요.”

커피잔을 든 조희연의 검은 눈동자가 김광도에게 박혔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요. 사진은 분위기까지는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남들도 다 그럽니다.”

“하지만 옷은 명품으로 고르세요. 명품이 그냥 명품이 아니거든요. 품격이 배어 나와요. 요즘은 돈 있으면 있는 만큼 쓰는 것이 국가나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더라고요.”

“아이고. 그래야겠군.”

“제가 여기 오기 전에 회장님 근래에 나온 사진 모두 스크랩해서 옷차림하고 머리스타일 체크했죠. 분위기에 맞는 차림이 드물었어요.”

“저런.”

다시 김광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조희연도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온 것이다. 귀엽다. 비음이 섞인 목소리가 울리는 것도 섹시하다. 유라시아 클럽에 현역으로 투입할 수는 없고 마담으로 딱 어울리겠다. 마담의 수준은 초특급이다. 그때 조희연이 말을 이었다.

“김 의원님은 모르고 계시지만 전 대금그룹 명예회장님의 ‘세컨드’예요. 그리고 남자관계도 복잡해요. 지금도 섹스파트너가 둘 있습니다.”

김광도의 시선을 받은 조희연이 빙그레 웃었다. 조희연의 흰 이를 보는 순간 김광도의 목구멍이 다시 말라 비틀어지는 느낌이 왔다. 눈에서 이제는 불이 나는 것 같다. 역습을 당했다. 그러나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