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142) 55장 사는것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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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죠.”

김광도가 그렇게 말했다. 오후 9시 반, 장소는 백제호텔 지하 1층의 클럽, 앞에는 조희연이 앉아 있다. 김광도는 지금 조희연을 두 번째 만나고 있다. 어제 오후에 만났을 때 김광도는 조희연의 고백에 논평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끄덕이며 웃기만 했던 것이다. 조희연의 시선을 받은 김광도가 말했다.

“인간은 지난날 어떻게 살았는가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조희연은 눈만 깜빡였고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날을 기준으로 평가를 매겼다면 난 낙오자가 되었지요.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이룬 겁니다.”

과연 그렇다. 그것을 자신도, 서동수 대통령도 믿어주었다. 그때 조희연이 물었다.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놀랐어요. 왜 부르셨어요?”

“거기, 대금그룹 명예회장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겁니까? 계속하겠다는 생각으로 날 만나러 온 것은 아니지요?”

그때 조희연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받아들이실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서 마음 놓고 터뜨렸죠.”

“그래놓고 다시 회장을 만나신다는 겁니까?”

“이미 끝냈습니다.”

조희연이 똑바로 김광도를 보았다.

“서로 합의하에요. 자랑할만한 관계가 아니어서 아직도 회장님과 저의 관계가 진행 중인 걸로 알겠군요.”

“소문이 많이 났군.”

“오래 만났거든요.”

“김 의원은 두 분의 관계를 모르셨고?”

“아셨으면 소개시켰겠어요?”

“나하고 맺어지리라는 기대를 해 보셨습니까?”

“상상은 했죠. 내가 보좌를 해드리면 좋겠다 하고.”

“나한테 아직도 감춘 비밀이 있어요?”

“꼭 감추려고 하는 건 없습니다. 지금처럼 다 털어놓을 테니까요.”

“한잔합시다.”

김광도가 술병을 들어 조희연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곳은 응접실처럼 꾸며놓은 귀빈용 룸이다. 술잔을 받은 조희연이 한입에 삼키고는 지그시 김광도를 보았다.

“중국 사업이 성공하시기를 빌게요.”

“중국 사업?”

“한랜드에서 서진(西進)하는 사업.”

그렇다. 김광도는 서동수의 지시를 받아 서진을 시작하고 있다. 동북3성에 투자를 했고……유라시아 중국을 설립했다. 김광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조희연 씨의 도움이 필요할지 몰라요. 당신 같은 인재가 있어야 돼.”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아요.”

“당신처럼 미인인 데다, 성적 매력이 풍기고 정치인들과 폭넓게 교류해온 35살 난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이요?”

조희연이 몸을 굳혔고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은 털어놓은 순간에 다른 기회를 얻은 거요. 당신의 용기가 그 보상을 받은 겁니다.”

그렇다. 결점 없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제 결점을 아는 인간이면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그때 조희연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눈빛이 강해졌고 섹시한 입술이 꾹 닫혔다가 풀렸다.

“그래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억지로 날 맞추지는 않습니다.”

조희연의 말이 이어졌다.

“난 털어놓는 순간에 당신과의 기대를 접었거든요. 그것이 김 의원이나 당신께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