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죽 재킷 · 식기 건조대… 일상적 사물에서 꺼낸 ‘아름다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창남, 식기건조대, 73×73㎝, 캔버스 위에 오일, 2017년. 통인옥션갤러리 제공

서양화가 이창남 ‘…직감’展

‘서양미술사’의 저자 언스트 곰브리치(1909∼2001)는 화가의 필법이란 순수하게 물감을 다루는 방식 이상의 것이며, 추가되는 정신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양화가 이창남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것보다 내 앞의 것을 그린다. 관념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벽에 걸린 오래된 가죽 재킷과 괘종시계, 선풍기, 식기 건조대 등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을 그린다. 그나마도 따로 연출된 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5년 전 서울 성동구 금호동 옥탑방 작업실로 이전하면서 별생각 없이 갖다 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곰브리치의 말처럼 ‘정신적인 부분’이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물을 보고 그린다는 것은 많은 정보와 시선의 교환을 전제로 한다. 이창남은 직면한 사물의 세계에 몰입하며 세계의 변하지 않는 실체, 혹은 본질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계속 변하는 작업실 상황에서 그는 내밀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즉 그는 시간을 그린다.

이창남이 2년 만에 개인전인 ‘시간과 사물-드로잉&페인팅:직감’전을 오는 14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옥션 갤러리(02-733-4867)에서 연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5번째다. 최근작 10여 점을 통해 작가가 옥탑방 작업실에서 마주한 사물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유화, 수채, 연필, 목탄 등 다양한 전통 재료들이 동원되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하건 이창남이 표현하는 것은 ‘미적 관조’의 세계다. 그는 사물에 관한 직감적인 성찰로 정치성이나 윤리성으로부터 독립한다.

작가는 말한다. “그랜드 캐니언을 그리는 것과 일상의 풍경을 그리는 것 사이에 그 아름다움에는 구별이 없다.” 그만큼 일상의 소재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는 얘기다.

미술평론가 김대신은 “이창남의 그림은 아름다움의 무차별성을 화폭에 옮긴다”며 “그 속에서 작가는 존재의 성찰과 함께 표현의 기쁨을 누린다”고 평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