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대통령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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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대통령의 말은 권력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8년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강원국 전 대통령연설비서관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린 정의(定義)다. 연설문을 작성할 때 각 부처에서 한 줄이라도 반영하기 위해 민원이 빗발치는데, 말 한마디가 정책·예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대통령의 연설문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최종 감수를 맡아 왔으니 국정 농단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연설문을 담당했던 백악관 스피치 라이터들은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해 ‘대통령이 선택하는 문장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연설문 하나 작성을 위해 수천 번 수정 작업을 반복해 정확한 표현을 찾는다고 한다. 실제로 최고의 연설로 꼽히는 지난 2009년 9월 건강보험 개혁법안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도덕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특징, 사회적 정의의 근본 원칙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미국의 특징’은 건강보험 법안의 제안자인 고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사망하기 전 오바마에게 보낸 편지 중 ‘우리나라의 특징(the character of our country)’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에서의 취임사, 5·18 기념사,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사, 현충일 기념사 등에서 예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같은 듯 다른 화제를 낳았다. 노 전 대통령의 돌직구 스타일보다는 감성적이고, DJ의 ‘첫째, 둘째, 셋째…’식의 딱딱한 논리 전개보다는 부드럽다. 현충일 기념사에서 진보 진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애국’ ‘산업화’를 강조해 공감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취임사에서 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란 문장은 정치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족쇄’ 같은 역할도 한다. 문 대통령의 연설문은 386 운동권 출신 시인인 신동호(52) 연설비서관이 맡고 있다. 시인이라는 감성에 운동권 역사의식 등이 문 대통령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가다. 이제 국민은 말이 현실이 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