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톡>중독노래방, 상처받은 이들이 들려주는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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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공간이 마치 연극 무대처럼 건조하게 다가온다. 또 그 안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가 묘한 재미를 전하며 애절하게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15일 개봉하는 ‘중독노래방’(감독 김상찬·사진)은 다양한 장르를 버무려놓은 독특한 영화다. 블랙코미디의 틀에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를 섞어 훈훈한 드라마로 완성했다. 몽환적이고 기이한 공간에서 비밀을 감춘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주류 상업영화의 문법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예측불허의 전개로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저수지 옆 변두리에 자리 잡은 중독노래방 주인 성욱(이문식)은 ‘야동’ 중독자(화면은 안 보고, 소리만 듣는다)로,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손님이 없는 이 노래방에 칙칙한 분위기의 게임중독자 하숙(배소은)이 찾아와 도우미로 일하게 되고, 그가 제공하는 특별한 서비스(?)에 손님이 줄을 잇기 시작한다. 여기에 ‘프로 도우미’를 자처하는 능청스러운 나주(김나미)가 합세하고, 빈방에 숨어 살던 점박이(방준호)까지 더해지면서 노래방은 활기를 띤다. 하지만 이 동네에 유흥업소 종업원을 노린 연쇄 살인마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며 이 노래방에도 불길한 기운이 스며든다.

낯선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일 때쯤 이들이 지닌 사연이 하나씩 드러나고, 각자의 상처를 표출하며 서로를 치유한다. 그러다가 ‘대안 가족’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며 밝은 톤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공간이 이런 흐름을 잡아준다. 일제강점기 때 호텔로 사용되다 노래방으로 개조됐다는 설정으로 만든 세트는 범죄 피해자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해 서로를 위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어둡고 음침한 공간이 처음에는 무겁게 다가오지만 이야기가 덧씌워지며 차츰 따뜻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주로 맛깔스러운 조연을 맡아온 배우 이문식은 특유의 힘을 뺀 연기로 주연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영화의 중심축을 잡아준다. 여기에 배소은, 김나미, 방준호 등 낯선 배우들의 날것같은 연기가 더해져 영화의 독특한 맛이 완성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영화의 주제가 마음에 와 닿을 때쯤 어느새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중독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청소년관람불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