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문화재>인조 反正 과정 새긴 碑… 조선 초기·후기 양식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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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촌동 인조별서유기비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이기도 했던 서울에는 수백 년 전 이야기를 담은 비석들이 많다. 병자호란의 아픔이 담긴 송파구 석촌호수의 ‘삼전도비’나 정조대왕이 영조를 회상하며 세운 은평구 진관동의 ‘금암기적비’나 구한말 을미사변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중구 장충단공원의 장충단비 등은 이미 서울시내 주요 문화유산 답사코스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은평구 역촌동의 ‘인조별서유기비(仁祖別墅遺基碑·사진)’도 역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비석이다.

인조별서유기비는 마을 놀이터와 어르신들 쉼터가 있는 주택가 공터 뒤편 언덕에 있다. 이 석비는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仁祖, 1623∼1649)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물렀던 장소를 기념하고자 숙종 21년(1695)에 세운 것으로 인조반정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그 현장을 증명해 주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1972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다가 2006년 2월 17일에 보물 1462호로 승격됐다.

놀이터 뒤편 관리사무소를 거쳐 계단을 오르면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기와지붕의 비각(碑閣)이 보이고, 비각 앞에 서면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인 귀부(龜趺)와 그 위에 놓인, 비석의 몸체인 비신(碑身)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석에는 조선 19대 숙종의 어필(御筆)로 쓴 ’인조대왕용잠지시별서유기비(仁祖大王龍潛之時別墅遺基碑)’라는 글귀가 보인다. 글을 풀어보면 인조대왕이 왕에 오르기 전(龍潛之時) 머물렀던 별장(別墅) 터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비(遺基碑)라는 뜻을 지녔다.

이곳은 원래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 원종으로 추존)이 소유했던 터전으로, 후일 인조 대왕이 되는 능양군(綾陽君)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정치가 극도로 혼란해지자 이곳 별서에 머물며 겉으로는 허송세월을 하는 척하면서 몸을 보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능양군은 정치를 바로잡고자 서인 일파인 김류, 이귀, 김자점, 이괄 등과 이곳에서 반정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1623년(광해군 15년) 3월 13일 반정 거사일에 장단부사 이서와 이천의 이중로 군사가 이곳에서 합류하고, 홍제원에서 김류의 군사와 합세하여 창의문을 통해 입성하여 창덕궁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축출함으로써 반정을 성공시켰다.

이 비석은 조형적으로도 의미를 지녔다. 거북받침돌은 조선시대 초기 양식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지붕돌은 한옥 양식으로 변화된 후기 석비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인조별서유기비’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문은 두 개다. 하나는 자물쇠로 잠겨 있고, 놀이터 뒤편 문화재 관리실 옆문이 열려 있다. 6호선 구산역 2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목재철물점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으로 난 마을 골목길로 들어가면 곧 놀이터가 나타난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