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세이프가드까지… 美의 度넘은 통상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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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에 편승한 미국 기업과 정부의 ‘아전인수식’ 통상 압박 공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세탁기와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자국 가전업체인 월풀의 청원으로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사에 착수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 장관은 지난 4월에 이어 지난 12일에도 “미국 반도체 시장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면서 미 무역확장법 232조(보복관세) 적용 가능성을 또 시사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맥락 없는 황당’, 그 자체다. 반도체의 대미 무역 수지는 만성 적자 상태다.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 금액은 33억5200만 달러(약 3조7900억 원)로, 수입 금액(36억6700만 달러)을 밑돈다. 반도체 장비까지 합하면 대미 반도체 관련 수입금액은 63억9900만 달러에 달해 적자 폭은 훨씬 크다.

세계 반도체 시장 중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메모리 비중은 20%에 불과하고, 미국 인텔·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이 주도하는 비메모리 비중은 80%에 달한 때문이다. 로스 장관이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차별적인 ‘엄포용’ 발언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탁기 역시 어이없는 상황이다. 세이프가드 발동을 청원한 월풀의 지난해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얼핏 보면 삼성전자(18.7%)에 밀리는 18.5%로 보인다. 하지만 16개에 달하는 가전 브랜드를 보유한 ‘공룡’ 기업인 월풀의 자회사까지 합하면 점유율은 40%에 육박하는 38.5%에 이른다.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레 후발 주자의 도전을 막고 독점적인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2001년 이후 사문화된 ‘세이프가드 발동’을 청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한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라고 자처해온 미국의 ‘자존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속 시원한 대응 모습 역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관범 경제산업부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