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文정부 ‘노동개혁 슬로건’의 3大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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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제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도, 문재인 정부가 쏟아내는 개혁의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잃어버린 보수정권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검찰·재벌·교육·노동 등 전 분야에 걸쳐 지난 정권의 정책을 뒤집는 과감한 조치들을 연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개혁의 가치를 공감하고 서로 양보하는 과정이 없다면 정부의 개혁 정책은 현란한 선언과 정책 홍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안과 비정규직 제로를 목표로 하는 문 정부의 노동개혁은 강력하다. 취임 다음 날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가 1만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에게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청와대는 개별 대기업의 비정규직 추이까지 살펴볼 수 있는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한 달 내에 일자리 로드맵을 만들고 공공분야에 1만2000명을 연내에 더 뽑겠다고 선언했다.

고용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청년들과 상시적 해고 가능성에 노출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해 고용을 늘리고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불안정성은 개인이나 기업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슬로건 위주로 조급하게 추진되는 노동정책이 이미 그 시작부터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의 노동정책은 단기적이고 손쉬운 성과에 집착하고 있다. 정부가 압력을 가하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일자리가 늘어나겠지만, 공공부문의 신규 채용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정부가 공약한 대로 공공일자리 81만 개를 창출한다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다. 더구나 과도한 정부 개입과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문제가 돼 온 상황을 고려하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더욱 정교한 계획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둘째, 일자리의 특성과 노동자의 숙련도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노동개혁 정책은 정책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과 편법을 양산할 수 있다. 새로운 노동정책으로 정규직 고용 증대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부담이 증가하면 기업은 새로운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기계로 노동을 대체하거나 해외로 회사를 이전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제정했지만, 오히려 이 법 때문에 비정규직을 2년 고용한 후 해고하는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개입으로 원하는 정책 효과를 얻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셋째, 양보와 타협이 없는 개혁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뿐이다. 현대사회의 노동정책은 전통적인 기업-노동자 관계뿐 아니라,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다룬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는 결국 최저임금 정책이 보호하려는 고용 취약 계층과 자영업자들 간 갈등을 초래한다. 또한, 기업의 임금 총액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이 양보하지 않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노-노 갈등을 촉발할 것이다. 실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통합 노조를 유지해 왔던 기아차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비해 사내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다.

산적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슬로건이 국민의 기대를 지나치게 키우고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국민으로부터 접수한 건의 사항이 일주일 새 1630여 건이라는 소식은 국민의 희망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한다. 문 정부가 일정 정도 노동개혁의 성과를 거두더라도 이미 높아진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상존하는 사회적 불만족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문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 추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문 정부의 노동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체계적인 개혁의 실행 계획과 함께 노-사(勞使)와 노-노(勞勞)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공동체의 비전을 그려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힘들더라도 정도(正道)를 걸어야 노동개혁의 실질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