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일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도로에 문재인 대통령의 신규 원전 백지화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천지원전’ 예정지 영덕 르포
“7년간 보수도 못해 유령마을
정부 정책 희생양… 보상해야”
“지역 발전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를 계기로 탈원전을 선언한 19일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도로에는 신규 원전 백지화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석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원전 백지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척이(여·84) 씨는 “평생 살면서 쇠락한 고향 발전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했는데, 물거품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마을에는 100여 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달용(84) 씨는 “원전이 건설되면 고향을 떠나야 해 7년 동안 무너지는 집 보수도 하지 않고 하수구도 손을 대지 않아 곳곳이 갈라지고 냄새가 나서 ‘유령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찾아간 인근 노물리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슈퍼마켓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정책이 뒤바뀌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그동안 입은 피해를 모두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섭 천지원전건설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원전 건설을 기대하며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와 원룸 등은 공동화하고 부동산 업계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며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이 사라지게 돼 인구 유출도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원전 지주총연합회는 20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생존권 사수’ 집회를 열 계획이다.
영덕군도 혼란에 빠졌다. 군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원전 건설을 파기했기 때문에 원전 예정 고시 철회 또는 재산권 피해 보상, 국책사업 지원금 반환 여부 등을 두고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원전 유치로 가산금(380억 원)을 이미 받았다. 또 특별 지원금, 사업자 지원금 등 모두 2조2000억 원을 더 받게 돼 있었다. 영덕은 올해 재정자립도 13.7%, 본예산 3700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낙후지역이다.
군은 2010년 주민 의견을 수렴해 원전 유치 신청을 했으며 정부는 2012년 영덕읍 노물·석리 등 4개 마을 324만여㎡를 천지원전 1·2호기 건설 예정지로 고시했다. 오는 2027년까지 원전이 건설될 예정이었다. 영덕군은 2015년 일부 환경단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원전 건설을 놓고 극심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투표는 결국 무의미하게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 분열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영덕=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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