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극장 상영 vs 스트리밍… 겉은 ‘플랫폼’ 경쟁·속으론 ‘밥그릇’ 싸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멀티플렉스 체인 3사가 극장 개봉을 거부하며 논란이 일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거대 돼지와 산골 소녀의 우정을 그렸다. NEW 제공

■ 영화 ‘옥자’ 사태로 본 멀티플렉스 체인의 명암

멀티플렉스 ‘개봉 거부’ 명분 약하고
넷플릭스도 ‘회원 확대’ 미지수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국내 극장 개봉을 추진하며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체인 3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거대 돼지 옥자와 소녀 미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틸다 스윈턴, 제이크 질런홀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 안서현, 변희봉 등 한국 배우들이 출연했다. 넷플릭스는 오는 29일 이 영화의 전 세계 동시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며 같은 날 한국, 미국, 영국 등 3개국에서 극장 상영도 시작한다. 하지만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 3사가 ‘홀드백’(극장 상영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온라인 서비스를 하는 것) 없이 극장 상영과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것을 문제 삼아 개봉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옥자’의 국내 배급사 NEW는 서울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을 비롯해 전국 79개 극장, 103개 스크린을 확보해 예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전체 극장의 93%(CGV 39%·롯데시네마 31%·메가박스 23%)를 차지하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운영 실태와 명암을 점검한다.

- 멀티플렉스

수직계열화·독과점 등 비판 속
‘옥자’에만 극장 정통성 내세워
전통의 대한 · 서울극장은 개봉
체인 3社 ‘거부’ 설득력 떨어져

- 넷플릭스

국내 회원 가입 저조한 상태
봉준호 내세워 마케팅선 효과
미끼상품으로 관심 끌었지만
가입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듯

이번 논란의 외형은 ‘전통 극장 상영’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랫폼 경쟁이다.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상영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과 “산업 변화에 맞춰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람 방식의 제시가 맞붙은 모양새다.

플랫폼 싸움은 이 영화의 칸영화제 진출이 결정된 직후 프랑스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프랑스극장협회(FNCF)는 칸영화제 측에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작품을 경쟁부문에 초청한 것에 반발하며 제동을 걸었고, 영화제 측은 넷플릭스와 조율에 나섰다가 실패한 후 ‘경쟁부문 초청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품에 한한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내년부터 적용키로 했다.

불씨가 국내로 옮겨온 후에는 싸움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졌다. 한 멀티플렉스 체인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자사 플랫폼에서만 영화를 틀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아마존이나 국내 인터넷TV(IPTV) 업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개봉하려 할 수도 있다. 플랫폼의 틀이 깨지면 극장뿐 아니라 국내 영화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개봉 거부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체인 측의 명분이 약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멀티플렉스 체인은 관객의 접근성을 강화하며 성장해왔다. 수직계열화, 스크린 독과점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관객 데이터를 내세우며 인기작을 아무 때나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제공해왔다”며 “그래 놓고 ‘옥자’에는 극장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다. 오히려 오랜 전통이 있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이 명분은 힘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분석가는 이어 “‘홀드백’을 문제 삼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지난해 메가박스에서 영국 BBC 방영일에 맞춰 드라마 ‘셜록:유령신부’의 특별 상영을 진행했으며 멀티플렉스 체인이 IPTV와 동시에 영화를 상영한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회원 수를 늘리려는 넷플릭스와 관객을 잡아두려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가 봉 감독을 앞세워 저조한 국내 회원 수를 늘리려는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 세계에 1억 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넷플릭스의 국내 회원 수는 10만 명 정도로 알려졌다. 또 다른 멀티플렉스 체인 관계자는 “그냥 ‘옥자’가 아니라 ‘봉준호의 옥자’이기 때문에 논란이 인 것”이라며 “넷플릭스는 봉 감독을 통해 이미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봤다. 넷플릭스가 정말 ‘옥자’의 극장 상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넷플릭스가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보긴 했지만 회원 수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이번 논란의 희생자로 보이지만 국내 소비자에게 확실히 존재를 알리며 얻을 건 다 얻었다”며 “미끼 상품을 통해 관심을 끌었지만 바로 가입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상황에서 멀티플렉스 체인은 향후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분석가는 “IPTV를 운영 중인 이동통신사들은 지금까지 ‘홀드백’ 기간이 지난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영화에 부분 투자하는 정도로 사업을 벌여왔지만 넷플릭스가 ‘옥자’를 통해 거둔 효과를 보고, 적당한 규모의 영화에 직접 투자해 동시 개봉하려 할 수도 있다”며 “결국은 유통망 싸움 프레임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영화 플랫폼의 지각변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분석가는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은 스크린의 대형화와 특별 상영관 확대 등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10년간 극장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잠식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극장에서 볼 영화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접할 영화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플랫폼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에 콘텐츠 다양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극장은 연간 2억 명의 관객이 찾는다는 자기 만족적 환상에 빠져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며 “투자배급사와 계열 멀티플렉스 체인의 수직계열화가 정점에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영화 소비층들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