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콜 前총리 일면만 보는 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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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국제부장

유럽은 또 하나의 별을 잃었다. 16일 서거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유럽연합(EU)에서 ‘위대한 유로피언’으로 불린다. 그는 생전에 마스트리흐트 조약의 체결을 이끌어 유럽의 통합에 기여했다.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통일 독일의 설계자’로 추앙된다.

콜 전 총리의 서거에서 분단된 한반도의 오늘을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를 장악한 대북 대화파들은 머지않아 평양으로 특사를 보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이는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아가는 것과도 같다. 사상적·이념적 회귀다. 포석은 이미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21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조건이 맞는다면 평양 방문은 여전히 좋은 생각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최근 워싱턴에서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데, 대화를 안 할 이유가 있나. 미국이 하지 말라면 안 하나. 대화에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원래 특보는 이의를 제기하는 악마의 대변인이라기보다는 의사결정권자 판단에 대한 전반적 동의 속에서 전략을 제시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도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그는 콜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동독이라는 실체를 인정하고 교류를 시작한 것이 동방정책”이라며 “정권이 바뀌면서도 그 기조가 잘 유지되어 콜 전 총리에 이르러 통일을 이끌었다”고 썼다. 이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말도 남겼다.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에서 북핵 문제 해법이 교류와 지원을 통한 김정은 정권 설득에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듯, 문 특보가 남북대화 조건으로 도발 중단을 제시한 것에 대한 의구심도 풀린다. 전임 박근혜 정부의 ‘핵 포기 의사’라는 남북대화 조건은 폐기된 문구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기억 속에서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의 ‘이중 결정(Double-track decision)’ 정책도 끄집어내야 한다. 슈미트 전 총리는 1977년 소련이 동유럽에 배치했던 SS-5 중거리미사일을 최신형인 SS-20 중거리 핵미사일로 교체하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과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의했다. 동시에 미·소 양측에 압력을 넣어 군비통제 협상을 진행하도록 유도했다. 기독민주당의 콜 전 총리는 사회민주당인 슈미트 전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 콜 전 총리는 양보와 협력만으로는 공산 진영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군비통제, 즉 군축의 교과서에서 다시 펼쳐봐야 하는 중요한 페이지가 하나 더 있다. 이중결정의 유산으로 미·소는 1987년 중거리핵미사일폐기조약(INF)을 체결했다. 1988년 진행된 기초사찰에서 미국은 117회, 소련은 34회의 사찰을 진행했다. 이후 폐기 및 불시사찰을 통해서도 철저한 검증을 했다. 과거 제대로 된 사찰 과정이 없었던 남북한의 평화협정과는 내용은 물론 차원이 다르다. 역사의 교훈 속에서 원칙을 갖고 진행되는 ‘문정인 사단’의 남북 대화에는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문 대통령이 실패한 햇볕정책의 상속자가 아니라 통일 한반도의 설계자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