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시대정신’ 휴간 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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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김대중 정부 때 ‘보수의 시대’를 준비하며 창간된 격월간지 ‘시대정신’이 5／6월호(통권 78호)를 끝으로 휴간한다. 1998년 11월 첫선을 보인 ‘시대정신’의 길은 고단했다. 창간 후 재정 문제에 부닥쳐 계간으로 바뀐 뒤 휴간했다. 이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신보수 이론지로 재창간됐고, 다시 격월간 시사지로 변화한 뒤 결국 휴간에 들어간 것이다.

창간 발행인인 한기홍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신보수 이념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500만 원, 후배 둘이 300만 원을 내 창간했다”면서 “보수정권 때엔 이념과 현실의 간격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진보정권 출범 후 보수세력이 혼미한 상황에서 재정난으로 휴간하게 되어 안타깝다”고 썼다.

‘시대정신’은 진보의 허구성에 환멸을 느낀 ‘운동권 전향세력’이 주도한 잡지다. 한 대표는 물론 이 잡지를 창간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홍진표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모두 1980년대 운동권의 핵심 인사들이다. 2006년 ‘시대정신’ 이사장을 맡았던 안 명예교수도 사단법인 뉴라이트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신보수 운동의 좌장 역할을 했다.

‘시대정신’은 좌파에서 전향한 뉴라이트 그룹이 주도한 잡지라는 점에서 미국의 ‘위클리 스탠더드’와 유사하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민주당의 무력한 평화주의에 절망해 공화당으로 전향한 네오콘 빌 크리스톨이 1995년 창간한 주간지다. 빌 클린턴 시대에 ‘보수의 시대’를 준비하며 창간되어 2000년대 조지 W 부시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위클리 스탠더드에 실리는 사설과 칼럼을 읽고 정책을 가다듬곤 했다.

‘시대정신’은 한 대표가 ‘독립운동’을 하듯 주머니를 털어 만들었지만, 위클리 스탠더드는 호주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돈을 끌어왔다. 초창기엔 매년 100만 달러(약 11억3600만 원)씩 적자가 났는데도 머독은 지원을 지속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을 매입하며 워싱턴의 잡지사에 매각했다. 위클리 스탠더드에는 20여 명의 보수 논객이 글을 쓰고 있고 발행 부수는 10만 부가 넘는다. 크리스톨은 22년째 편집장 자리를 지키며 보수의 시대 미국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시대정신’ 같은 잡지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한국 보수 세력은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