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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민 정치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6월 21일(水)
文대통령의 ‘두 가지’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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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정치부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에 없는 모두발언을 했다. 사전 조율이 없었던 터라 긴장했던 참모진은 발언의 수위에 더 당황했다. “야당과의 협치를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마치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대통령도 답답한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문제는 이어진 발언이다. “(청문회)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저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 야당도 국민의 판단을 존중해 주시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이유를 묻는 참모진에게 “반대할까 봐 그랬다”고 답했다고 한다. 적어도 이날 발언은 문 대통령의 소신이었던 셈이다.

역대 대통령이 다 그랬겠지만, 촛불시위와 전직 대통령 탄핵을 거친 문 대통령에게 ‘국민’은 특별한 존재다. 이 같은 인식은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행한 주요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취임선서식(5월 10일)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5·18 기념사에서는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되겠다”고 말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6·10 민주항쟁 기념사에서는 “임기 내내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연설문의 ‘국민’과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언급한 ‘국민’은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전자의 국민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일시적으로 위임해 준 원론적 의미의 주권자이다. 반면 후자의 국민은 여론조사에서 강 후보자의 임명 강행에 동의한 응답자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이다. 따라서 강 후보자 임명 강행은 논리적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섬기겠다’는 취임선서식의 약속을 어긴 셈이다.

정치지도자가 인사를 하거나 정책을 추진할 때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순 없다. 그래서 고안된 시스템이 대의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고 국회의 의석 분포가 국민의 뜻이다. 물론 여소야대의 정치 환경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우회해 국민과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고잉 퍼블릭(going public)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특히 정권 교체에 성공한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에 여론정치는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나라다운 나라 세우기’란 모토가 보여주듯 문 대통령은 기존 제도와 관행이 개혁의 대상이고 국회 역시 국민의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과는 협치할 수 없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따라서 야당과의 협치를 자칫 반개혁 세력과의 타협으로 느낄 수 있고 ‘여론과의 협치’를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술은 많은 함정을 갖고 있다. 당장 높은 지지율로 국회를 압박할 수 있지만, 국회와의 대치 상황이 격화하거나 장기화하면 국정운영이 오히려 어려워진다. 추가경정예산안,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각종 개혁법안 처리는 야당과의 타협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더구나 진보 성향의 정부가 ‘여론정치’를 중시하면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을 넘어 여론에 국정이 휘둘릴 수도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이미 노조나 시민단체 등 진보 진영으로부터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고 그 요구들이 국가적 차원이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국익이나 대다수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미나 남유럽에서 여론정치가 복지 포퓰리즘을 촉발시키고 결국 경제 파탄으로 귀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위와 탄핵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거쳐 탄생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우리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는 그만큼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역시 이 같은 원칙을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된다. 더구나 앞으로 야당의 반발은 더 거세지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다. 개혁의 명분, 높은 지지율을 갖고 있는 지금이 야당과의 협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적기다. 이 기회를 놓치면 노무현 정부가 겪었던 한계를 다시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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