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강화되는 美·中 공조, 배제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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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정부의 대미 관계 정립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와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방미 중 발언이 논란을 야기하고, 북한이 불법 억류했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긴급 송환 후 사망 사건으로 미국 내 대북 강경 대응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웜비어 사망 사건을 두고 지난 19일 미국 백악관의 언론 브리핑은 우리의 외교적 위상을 실감하게 한다. 그 핵심은 중국과의 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 강화가 그 해법이고,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한국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미·중 통상 갈등을 해결하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라는 미·중 담판론이 한·미 동맹의 빛이 바래게 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중 양국이 21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외교안보대화를 갖고 대북 제재 공조를 한층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심상찮은 조짐이다.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미·중이 북핵 담판을 지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키우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불협화음을 수습하고자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축사의 진의(眞意)를 재해석하고 문 특보의 발언을 개인 의견으로 폄훼한 바 있다.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과 아무 조건 없이 대화한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본인의 입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과연 이 시점에서 이러한 엇박자 행보가 필요한 것인가.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언급한 전략적 모호성의 의미가 전략의 ‘유연성’이 아닌 전략의 ‘부재(不在)’로 느껴진다.

대미 협상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적 선택이 우리의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점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단계적 수순을 갖추지 않은 가운데 단순 의사 타진을 위한 돌발적 접근은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축사에서 “북한이 핵·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 조건이 ‘핵 폐기’가 아닌 ‘추가 실험 중단’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낳은 바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사드 배치엔 제동을 걸면서도 대북 교류·지원을 강조했다. 이를 해명하고자 외신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후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단계별 접근법을 피력했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문 특보의 발언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문 정부의 향후 대미 정책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언 내용 중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미군의 전략자산을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한·미 동맹과 관련해 사드 문제로 인해 한·미 동맹이 깨진다면 그게 동맹이냐는 말은 특보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어려운 외교안보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은 한·미 관계의 큰 틀을 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려되는 점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방미와 유사한 상황이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첫 방미 때 미국 내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만나면서 평소 발언과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친미 발언을 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국 입장에 거의 동조하다시피 했다. 역설적으로 당시 방미 성과는 미국 내 잔존한 노 대통령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었으나, 실익(實益)은 적었던 한·미 정상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 정부에 대한 미국 정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히려 실익을 챙기지 못한 우(愚)를 범한 것이다.

이런 만큼 다음 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국내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전시효과를 위한 ‘한 건’식 정상외교는 필요 없다. 미·중이 한반도 문제를 입맛대로 담판 짓지 않도록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국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는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을 탐지조차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불필요한 외교적 노이즈를 통해 우리의 협상력을 제고하려 하기보다는 명확한 논리와 국력에 걸맞은 외교를 통해 우리의 실익을 챙겨야 한다. 국익의 기본은 안보(安保)이고 이에 대한 정쟁은 반역임을 역사는 보여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