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 감사인사 큰 힘… 다시 태어나도 조종사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사옥에서 21년 경력의 황연정 기장이 항공기 미니어처 옆에서 조종사 생활과 경력단절 걱정 없는 복직, 육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21년차 베테랑’ 황연정 기장

‘경력 21년 차, 국내 세 번째 여성 기장, 쌍둥이 엄마.’

대한항공에 이 같은 타이틀을 가진 운항 승무원이 있다. 바로 황연정 기장이다. 지난 22일 파리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황 기장을 만나 ‘엄마’와 ‘기장’, 두 인생을 풀어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996년에 입사한 황 기장은 경력 21년 차의 베테랑이다. 황 기장은 부기장 시절을 거쳐 지난 2008년 국내 세 번째 여성 기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 쌍둥이를 출산해 엄마가 됐다.

황 기장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며 “조종사라는 내 직업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다”고 직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황 기장은 비행기 조종석에는 남녀 구분이 없고 서로 협력하는 동료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조종사는 여자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라며 “남녀 차별 없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런 황 기장도 출산 후에는 장기간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임신과 육아로 휴직한 지 20개월이 지나자 조종석이 그리웠다. 그는 “휴직 후 육아에 집중하던 어느 날 ‘위잉’하는 비행기 엔진 소리를 들었는데 가슴이 뛰었다”며 “회사의 배려로 더 쉴 수도 있었지만, 엔진 소리를 들은 직후 복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쌍둥이의 엄마와 항공기 기장 역할을 모두 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황 기장은 일하는 엄마이다 보니 아이들을 못 챙겨주는 부분이 생길까 항상 걱정이었다. 그때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었다.

그는 “슈퍼맘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은 것이 도움이 됐다”며 “가사와 육아에 대한 남편의 협조도 필수적”이라고 지금까지 두 삶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황 기장이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대한항공의 기업 문화도 큰 몫을 했다. 전체 직원 1만8700여 명 중 42% 이상이 여직원인 대한항공은 대표적인 여성 친화 기업으로 꼽힌다.

대한항공은 육아휴직, 산전후휴가, 가족돌봄휴직 등 법적 모성보호제도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는 사내 문화 덕분에 매년 평균 600명 이상의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 육아휴직 평균 사용률이 95% 이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5년 국내 평균이 59.2%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황 기장은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과 운항 승무원은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 육아휴직까지 최대 2년 휴직이 가능하다”며 “경력단절 걱정 없이 육아에 전념하고 언제든지 복직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황 기장. 워킹맘을 위한 회사 지원 외에도 그가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승객들의 응원이다. 색종이에 감사편지를 써준 7세 꼬마 손님과 사업 출장 차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던 여성 승객이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다’고 선물을 건넨 일화 등은 잊을 수 없는 감사한 기억이다.

그는 “승객분들이 기내방송을 들으시곤 반가워하시며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책임감을 느끼며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어느덧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를 위해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독립적인 아이들로 컸다. 가끔은 비행을 떠나는 엄마에게 사랑이 담긴 쪽지를 건네기도 한다.

황 기장은 “처음 엄마가 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좋은 날은 분명히 온다”며 “힘들 때는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그 시기를 잘 견뎠으면 좋겠다”고 워킹맘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황 기장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지치고 힘들 때 하늘을 한 번 보면 큰 힘이 되곤 하잖아요. 항상 하늘을 보며 일하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