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골프공에 미친 ‘볼닥터’… “모두 완전히 둥글진 않아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준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엑스페론골프 서울사무소에서 반으로 자른 골프볼을 보여주면서 편심을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김영준 엑스페론골프㈜ 대표

“포장지를 뜯은 새 골프볼이 찌그러져 있다면 누가 믿겠어요?”

김영준(47) 엑스페론골프㈜ 대표는 우연히 알게 된 골프볼에 관한 ‘비밀’을 밑천으로 골프업계에 뛰어든 ‘돈키호테’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엑스페론골프 서울사무소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전이 없다”면서 “당연함의 부정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역발상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광주 평동산단 공장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대뜸 “골프볼이 완전히 둥글지 않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엔 잘못 본 줄로 알았고, 몇 번 치면 변형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김 대표는 골프볼의 지름을 재는 ‘테스터’를 꺼냈다. 시중에 유통 중인 새 골프볼 몇 개는 처음엔 테스터를 통과했다. 공인 규격(직경 42.67mm)보다 작았던 불량 볼이었던 것. 이른바 ‘편심(偏心)’ 때문이었다. 골프볼은 대개 압축된 고무로 된 코어를 가운데 넣고, 액체의 커버를 틀에 넣어 찍어내 완성한다. 마치 붕어빵처럼. 하지만 시중에 팔리는 제품들은 전수조사를 하지 않기에 이런 불량품들을 모두 적발해내지 못한다. 편심이 생긴 골프볼은 아무리 정확히 맞혀도 휘어지고, 솟아오르다가 뚝 떨어져 방향과 거리 편차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김 대표는 골프볼 밸런스를 찾아 편심을 잡아주는 아이템을 고안했다.

골프장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커피 자판기처럼 볼을 기계에 넣으면 곧바로 최적의 편심을 찾아 ‘얼라인먼트 라인’을 찾아주는 기계 장치도 개발했다. 또 겨울에 볼을 덥혀줄 수 있는 온열기를, 3개의 볼을 한 번에 덥히도록 텀블러 형태로 개발했다. 테스트 결과 평균 12% 정도 비거리가 차이가 났다. 골프볼로 인해 잃어버린 거리를 찾아주는 아이템 개발에 골몰해온 결과다. 그래서 직원들이 김 대표에게 붙여준 별명은 ‘볼 닥터’. 김 대표는 골프볼 연구에 쏟아부었던 열정이 큰 만큼 자긍심도 적잖다.

사실 김 대표의 사회 진출 첫 아이템은 옥외광고물 제작사업이었다. 개업식 때 쓰는 노란색 풍선에 바람을 넣어 만든 옥외 광고물을 처음 개발해 대박을 터트렸다. 한때 거래처가 7000여 곳이나 될 정도였다. 중국에 공장 설립을 계획했다가 위안화 폭등으로 동업자에게 넘겨주고 무역업으로 돌아섰다.

그 무렵 골프를 배웠던 김 대표는 미국으로 출장 갔다가 우연히 잠수부가 골프장 해저드에서 골프볼을 수거하는 장면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로스트 볼’ 시장에 눈을 돌렸다. 김 대표가 시장조사를 해보니 국내 로스트 볼은 연간 1억1000만 개로 추정됐다. 연인원 3800만 명이 골프장에 내장해 라운드당 4.5개를 잃고 돌아간다는 것. 산악지형이다 보니 계곡과 산, 해저드가 많아 미국의 1.5개, 호주의 1.0개보다 훨씬 많다고. 잃어버린 볼 10개 중 7개를 해저드로 보내기에 수거율은 90% 정도이며 상태가 좋은 것은 개당 500원에서 최고 2000원에 되팔기도 한다.

김 대표는 “수거한 로스트 볼을 직원들과 하루 5000개 이상 검사했고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안으로도 둥글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며 “둥글지 않은 볼을 쪼개봤더니 코어가 한가운데에서 약간 벗어났거나, 볼의 커버 두께가 얇거나 두꺼웠고 그래서 볼이 제작될 때부터 편심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골퍼의 드라이버 샷 체공시간은 4∼5초. 프로들은 6.5∼7초까지 떠서 날아간다. 이때 볼의 무거운 쪽이 아래로 가려는 쏠림 현상이 생기고 무거운 쪽으로 회전해 슬라이스나 훅 구질이 나오기도 한다. 찌그러진 볼이라도 럭비공처럼 좌우 밸런스를 잡고 굴리면 똑바로 나가듯, 편심을 표시해 주면 그 편차를 줄일 수 있다는 원리를 깨쳤다.

곧바로 엑스페론골프를 창업했다. 시중에 유통 중인 볼에 밸런스 체크 라인을 그려주는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번거롭다며 외면했다. 그래서 그는 아예 볼 공장을 설립했다. 지난해 6월 직접 볼을 생산하는 대신, 일반적인 샘플링이 아닌 전수검사를 통해 편심 테스트 공정을 더 추가했다. 그래서 ‘얼라인먼트 라인’이 그려진 볼은 시중의 가장 비싼 볼보다 1더즌당 1만 원 더 높게 책정했다. 골프숍마다 테스터를 구비해 놓고 타사 제품과 비교하도록 했다.

2002년 32세 때 골프를 시작한 김 대표는 1년 이상을 오전 6시 연습장에 들러 2시간씩 연습했다. 레슨도 받았다. 그래서 골프배운 지 2년 만에 81타를 남겼다. 그런데 골프업계로 발을 디디면서 오히려 라운드를 자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기량도 거기서 멈췄다. 지금까지 베스트 스코어다. 김 대표의 지난해 라운드 수는 3차례뿐. 올해는 아직 18홀 라운드를 한 번도 마치지 못했다. 시간이 아까워서란다. 김 대표는 “연간 100일 이상 해외 출장을 다니고 광주, 경남 김해의 두 공장과 서울 사무소를 번갈아 다니느라 짬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 엑스페론골프배 전국아마추어대회를 개최하면서 1000명 이상의 아마추어 골퍼에게 직접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도록 했다. 또 잠재력이 큰 중국을 겨냥해, 내년 9월 론칭을 목표로 일본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골프 의류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