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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6월 23일(金)
문재인-민노총 14년 만의 再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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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노동계를 향해 “적어도 1년 정도는 시간을 달라”고 한 그 시각, 민노총은 이미 장외 실력행사 중이었다. 이날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출근시간대부터 서울 도심을 휘저었고, 민노총이 기획한 ‘6·30 사회적 총파업’에 학교 비정규직연대, 최저임금 만원 공동행동 등이 앞다퉈 동참 선언을 했다.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의 옥중 지침 ‘칭기즈칸의 속도전’과 문 대통령의 ‘1년 유예론’이 맞붙은 형국이다. 친노(親勞)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노동계에 역습을 당한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 대통령이 굳이 1년을 언급한 것 역시 과거 민노총과의 악연도 적잖이 작용한 듯하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첫해인 2003년은 잦은 노동분규로 노·정(勞政)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두산중공업 노조원 분신 사망을 시작으로,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거부, 철도노조·화물연대의 잇단 파업으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으나 노 대통령 지시로 노동쟁의 업무를 맡아 현장에서 설득·조정에 나섰다. 노 정부는 예상대로 처음에는 노동계에 유화 제스처를 썼지만, 도를 넘는 행태가 이어지자 강공으로 돌아섰다. 연세대에서 농성 중이던 철도노조원들을 강제 진압했고, 화물연대 파업 때는 군(軍) 대체인력 투입까지 검토할 정도였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노 정부는 노사관계 로드맵, 곧 ‘노무현식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민노총은 대화를 거부했다. 첫해부터 등 돌린 청와대와 민노총은 임기 5년 내내 냉랭했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노·정 관계로 참여정부 개혁 역량을 손상시킨 측면이 크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역할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문 정부의 성패는 일자리 성적표로 평가될 것이다. 공공 일자리 81만 개는 어렵지 않은 과제다. 문제는 민간 일자리인데, 그건 세금이나 의욕만으론 되지 않는다. 기업과 노조가 손발을 맞춰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노·사·정에 다양한 직능 대표까지 망라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다. 1999년 이후 노사정위원회를 외면했던 민노총도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문 정부는 일자리위가 노동 문제를 다루는 기구는 아니라고 애써 말하지만, 비정규직·최저임금 등의 현안이 일자리 논의를 비켜 가긴 어렵다. 결국 민노총의 거부감이 덜한 일자리위를 사회적 대타협의 연결고리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회의소’ 신설도 주목할 만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노동 버전으로,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90% 근로자가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기구다. 일자리위나 노동회의소는 10%에 독점돼왔던 노동계 대표성을 재편할 단초가 될 수 있다.

민노총은 다소 곤혹스러운 처지로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일축하면 그만이었으나, 이른바 ‘촛불정부’가 출범한 마당에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다. 대기업·공기업의 고액 근로자가 주력인 민노총 조합원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은 관심 밖 사안이다. 새 정부를 겨냥한 기선 제압용으로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일선 조합원들은 무덤덤하다. 민노총은 피폐한 노동 현실이 재벌 탓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면서 임금 독점, 고용 세습, 취업장사 갑질 등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했다. 비정규직 존재도 귀족 노조의 철밥통 유지를 위해 맞바꾼 대가다. 청년 등 노동 약자들에게 민노총은 진보세력이 아닌 기득권 집단일 뿐이다. 민노총에 사회적 대타협은 조합원이 가진 몫을 내놓는 것을 뜻한다. 현 여건에선 투쟁도, 양보도 여의치 않은 민노총이다.

문 대통령의 1년 유예론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14년 전에는 노동계 기대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주저앉았다. 지금은 ‘대선 빚’까지 더해 제 몫을 챙기려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높다. 그 중심에 민노총이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민노총 등 기득권 세력의 양보가 필수지만,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력도 제한적이다. 문 대통령이 지향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가장 큰 힘이 ‘공정·정의’라는 명분이다. 노동시장 과실을 독점하는 특권노조, 불법을 일삼는 강성노조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바로잡는 데 나선다면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한 개혁동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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