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 3대 규제 ‘파고’>40만 설계사에게 ‘정치적 보호막’… 보험업계 근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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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 보험설계사 노동3권 보장 파장

“특수근로자에 노동 3권 보장”
인권위 권고… 보험업계 긴장

위임계약 맺고 기본급도 없어
대법원 “근로자 아니다” 판단

법제화땐 ‘구조조정’ 전망에
당사자들은 되레 ‘해고 걱정’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한 이후 국내 보험업계가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보험설계사로 대표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 보호와 실손 보험료 인하 등 보험산업의 근본을 흔들 만한 현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21일 실손 보험료 인하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 보험업계를 태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보험산업은 여성·중장년층 일자리 창출 등에서 파급 효과가 있다. 또 보험산업이 대한민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공적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 정부가 업계 현안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문화일보는 3회에 걸쳐 문 대통령 시대에 보험업계가 직면한 이슈를 점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기간인 5월 1일 노동절을 기념해 노동정책을 발표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실직자·구직자 등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기본권 보장’과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 개념으로 재정립’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 및 의무가입’ 등을 명문화했다. 머지않은 시점에 문 대통령은 이 같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보험업계 압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인권위원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동 3권 보장해야” = 그동안 매 정권마다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 3권 보장과 산재보험 적용 확대 등을 시도해 왔으나 막상 현실의 벽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보험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5월 25일 문 대통령은 인권위의 위상과 권고 수용률을 올릴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는 곧바로 29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포함되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국회의장에겐 “관련 법에 대한 심의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조속히 입법적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가 보험업계 압박의 선봉에 선 모양새다.

◇보험설계사는 근로자인가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 1항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직군을 말한다. 그 시행령에선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신용카드 모집인, 레미콘 기사, 택배 기사 등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규정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보험설계사에 대한 기본권 보장 논란은 결국 보험설계사를 근로자로 볼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대법원은 지난 2000년 1월 28일 판결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느냐의 여부는 그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에 있어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한다”며 “종속적 관계에 대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보험설계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정해진 기본급이나 고정급 지급 △근로에 따른 보수 지급 △제3자를 고용해 업무 대체 가능 등을 근로자 판단 기준으로 봤지만, 성과가 있어야 급여가 있는, 이른바 실적 베이스 급여를 받는 보험설계사에겐 어떤 기준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바 있다.

보험설계사는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 계약을 맺는다. 근로자는 회사의 업무 지시에 따라 일을 하지만 보험설계사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한다. 휴가와 출퇴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험설계사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보호되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노동 3권 보장은 곧 대량 구조조정” =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의 전체 보험설계사는 40만 명에 달하고 있다. 2008년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의 평균 연령은 29.6세, 골프장 캐디는 32.7세였던 데 반해 보험설계사는 44.2세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속 설계사’(특정 보험사에 속해 해당 보험사의 상품만 팔 수 있는 보험설계사) 19만6796명 중 여성의 비중은 74.2%(14만6101명), 50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44.8%(8만8326명)였다. 금융감독원에 보고된 기준으론 생명보험 설계사의 월 소득은 평균 317만 원, 손해보험 설계사는 254만 원으로 개인 능력에 따라 고소득이 가능한 직업으로 꼽히고 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들은 회사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동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보험사들은 능력 있는 분들을 모시고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며 “보험설계사가 회사보다 갑(甲)의 위치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만약 정부가 예상대로 보험설계사의 노동 3권 보장 입법화에 나선다면 보험업계는 어떤 대응에 나설까.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관리 비용 급증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정예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측한다. 업계에선 전체 40만 명 중 12만 명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동우 한국보험대리점협회 상무는 “보험설계사들도 원치 않는 노동 3권 보장 법제화를 시도할 경우 오히려 그 피해가 능률이 떨어지는 보험설계사의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보험설계사를 위한 일을 하겠다면 최소한 보험설계사들의 목소리는 청취한 후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 보호법’이 결국 비정규직의 일자리만 위태롭게 만들었다”며 “시장 질서를 무시하는 정치권의 탁상공론이 항상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