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서 동결한 北자산에 유럽 60여 은행 “채권 집행”

국제적 대북 압박 강화

러 석유 年 20만~30만t
매년 北에 유입 폭로도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대한 20억 달러 상당의 채권을 가진 유럽의 은행들이 미국 정부가 동결한 미국 내 북한 자산에 대해 채권을 집행할 계획이다. 국제적 대북 압박이 강화되는 기류 속에 전직 북한 노동당 간부는 러시아산 석유가 연간 20만∼30만t씩 북한으로 유입됐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ANZ그린드레이즈은행, ANZ상업은행 등 60여 개 유럽 은행이 조선무역은행을 상대로 1992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16억1513만 스위스 프랑(약 1조9200억 원)과 9억2948만 독일 마르크 상당의 배상 판결을 받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결론을 미국 현지에서 집행하겠다는 신청서를 미 연방 애리조나 지방법원에 지난 16일 제출했다. 또 이들 은행은 당시 판결에서 법률 비용으로 부과된 10만 영국 파운드(약 1억4600만 원)와 중재위원회 관련 비용의 일부인 미화 8만4760달러(약 1억 원)를 미국이 동결한, 또는 앞으로 동결할 자산에서 저당잡겠다고 밝혔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의 은행과 금융기관은 1977년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빌려준 돈이 상환되지 않자 미국 내 북한 자산 몰수 조치를 취해왔다. 은행들은 미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에 따라 1992년 파리에서 받은 판결문을 1995년 미 연방 워싱턴 지방법원에 등록해 미국 내 집행 승인 권한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애리조나에서도 판결을 집행하고 나선 것이다.

또 최근 미 당국에 외교행낭을 압수당한 북한 대표단 사태가 유럽 은행들의 이 같은 조치와도 관련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 유엔 소식통은 RFA에 “최근 애리조나 법원에 신청된 수억 달러 소송 건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 대표단이) 다녀온 듯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 법무부가 지난 14일 워싱턴 지방법원에 조선무역은행 돈세탁을 지원한 중국의 밍정(明正)국제무역회사를 기소하고 관련 자금 190만 달러(약 21억 원) 압류를 추진한 사건의 수사를 미 연방수사국(FBI) 애리조나 주 피닉스 지부가 담당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당 ‘39호실’ 간부로 일하다 지난 2014년 탈북해 워싱턴 인근에 거주 중인 리정호(59) 씨는 28일 교도(共同)통신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매년 20만∼30만t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싱가포르 회사들이 20년 동안 이를 중개해왔다고 밝혔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