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것들, 가장 새로운 것으로 탄생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어디에나 널려 있는 디지털 시대에 독자들에게 물리적으로 읽는, 절제되고 신비하고 퍼스널하고 럭셔리한 아날로그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료 사진

아날로그의 반격 /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데이비드 보위의 명반 ‘더 라이즈 앤드 폴 오브 지기 스타더스트(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의 첫 곡 ‘파이브 이어스(Five Years)’를 보죠. 마지막은 정말 감동적이에요.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보위가 정말로 눈물을 흘렸죠.”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 나오는 전설적인 녹음 엔지니어 켄 스콧은 당시 녹음실 풍경을 떠올리며 지금이라면 이런 음반은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보위의 갈라진 소리를 매끈하게 다듬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이브 이어스를 아름답게 만든 것은 보위의 떨리는 목소리인데 말이다.

보위를 비롯해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롤링스톤스 등 숱한 뮤지션과 작업을 한 그는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기술이 몰고 온 변화를 지켜봤다. 위대한 가수들의 목소리가 오토튠으로 바뀌는 것을 봤고, 그래미상 수상 경력의 드러머 대신 드럼 머신이 세션으로 선택되는 것을 봤다. 전설적인 록 뮤지션에게 최고의 연주 대신 기타 솔로를 59번이나 연속 연주시켜서 잘 나온 부분을 짜깁기하는 것도 목격했다. “음악인들이 영혼을 잃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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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진짜’를 잃어버리게 했다고 생각하는 음악인은 스콧만이 아니다. 최근 많은 뮤지션이 빈티지 스튜디오 장비를 갖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2011년 그래미상을 받은 푸 파이터스의 ‘웨이스팅 라이트’는 차고에서 아날로그 장비로 녹음됐다.

아날로그의 대반격. 캐나다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 완성된 시점에 아날로그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한다. 아날로그 상품, 서비스, 아이디어가 처음엔 도시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는 듯했지만 곧 주류 소비문화로 확대돼 우리를 둘러쌌다고 한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동네 레코드점 점원과의 대화였다. 몇 년 전부터 LP 음악에 심취해 음반 가게를 드나들던 그는 어느 날 점원에게 가장 많이 오는 고객이 누구냐고 물었다. 1달러짜리 세일 코너 명반을 찾는 쉰내 나는 남자를 떠올리며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여자들요! 여자애들이 레코드를 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뀐 겁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아날로그가 가득했다. 창업자들을 만나면 대부분 몰스킨 수첩에 메모를 했다. 의류 체인들이 갑자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여놓는가 하면, 식료품 매장은 LP판 판매를 시작했다. 뉴스에선 아날로그 트렌드 보도가 이어졌고 실리콘 밸리에서는 명상 강의가 대유행이다.

이에 저자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부터 미국 내슈빌 레코드 공장까지 아날로그 현장을 찾아 직접 취재에 나섰다.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분석했다. 책은 음반, 종이, 필름, 보드게임, 책, 서점, 오프라인 매장, 농산물 직거래 장터, 실리콘 밸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담은 아날로그 문화 현장 보고서이다.

책을 보면 아날로그 반격은 단순한 ‘감’이 아니다. 미국에서 LP 앨범 판매량은 2007년 99만 장에서 2015년 1200만 장으로 늘었고 연간 성장률이 20%를 웃돈다. 미국 서점연합에 가입된 서점은 2009년 1650개로 최저점을 찍었다가 2014년에는 2227개로 늘었다. 문 닫는 잡지보다 많은 잡지가 창간되고 샤넬 같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인쇄 광고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온라인 상거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애플 스토어를 필두로 오프라인 매장은 강력한 성장세이다. 아마존 CEO 제프 베저스도 회의 때 6쪽짜리 종이 보고서를 써 와서, 10분간 읽고 이야기하도록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아날로그에는 있지만 디지털엔 없는 것이다. 0과 1로 치환되지 않는 인간적인, 그 모든 것.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은 그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디지털 파일로 듣는 것에 비해 효율적이지 않지만 만족감은 크다.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보다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판의 표면을 긁는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손과 발과 눈과 귀를 사용해야 한다. 물리적인 감각이 더 많이 동원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날로그는 돈이 된다. 책을 통해 저자가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포인트이다. 아날로그는 단순히 인간적일 뿐 아니라 시장의 실제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5년 미국과 영국의 음반업계는 유튜브나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의 광고 수입보다 LP로 벌어들인 수입이 많았다. 디지털 미디어 대부분은 아직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지만 최고급 잡지는 구독자 수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끝 없이 복제가 되는 디지털, 너무 매끈해 아우라가 없는 디지털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날로그는 쿨한 것, 고급스러운 것이 되면서 시장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귀한 것은 값이 오르는 법이니 아무리 비싸도 LP를 사고, 어디서나 제공되는 디지털 알고리즘보다 사람의 큐레이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서점에서 책을 사는 독자는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많이 교육받은 최고의 소비자들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저자의 결론은 ‘아날로그는 아름답고. 힘이 세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 뇌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감정은 물론 자유의지조차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넘치는 시대에 새로운 균형 감각을 제공한다. 디지털 위력에 움츠린 아날로그 주의자들에겐 자신감을 회복시켜 줄 책이다. 관련 업종에서 일하거나 사업을 구상 중이라면 필독을 권한다. 많은 영감과 실질적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을 테고, 밑줄 긋는 손은 매우 바쁠 것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