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독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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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끈이론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오구리 히로시 캘리포니아 공과대 교수의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바다)이 서점가에서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번 달 초에 나온 책은 지금까지 3쇄 1만 부가 팔리며 각 서점의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모든 편집자의 목표는 중쇄’라는 말이 있듯이 책 시장에서 이런 반응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출판사도 책을 내면서 요즘 수학책이 좋은 반응은 얻고 있으니 초판 정도는 소화되겠지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과학의 시대, 교양 과학서 붐인 데다 과학 독자들의 관심이 오랫동안 생물학, 진화 생물학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맞물린 분야에 머물다 천문학, 우주과학으로 이어지더니 최근 쉽지 않은 물리학 쪽으로 넘어온 데 이어 드디어 수학에 이르렀다는 분석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책 출간 소식을 알리자 하루 만에 1000건 넘게 공유가 이뤄지더니 실제로 별다른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는데 책은 순식간에 과학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초끈 이론과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저자의 명성이 당연히 작용했겠지요. 하지만 이보다는 준비한 채 기다리던 독자의 힘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책은 오구리 교수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위해 쓴 책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있는 자유인의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학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논리, 문법, 수사, 음악, 천문, 산술과 기하라는 고대 그리스의 리버럴 아트 7과목을 언급하며 이를 위해 수학이 필수라면서 말이죠.

오구리 교수는 O J 심슨의 재판 이야기에서 시작해 불확실한 정보에서 정확한 판단에 이르는 확률을,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실험에서 페르미 추정을,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하다 괴델과 코엔의 정리를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쉽게 읽히고 재미있게 슬슬 읽다 보면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게 되는 쉬운 책은 아닙니다. 사실 그런 책은 없습니다. 책은 언제나 결과만큼의 노동을 요구합니다. 저자도 언어에 비유해 기본 문법책이 아니라 실제 활용 책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응답한 독자는 오로지 외워서 정답을 맞히는 수학이 아니라 이제 진짜 수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독자들입니다. 새로운 독자의 발견이지요. 다른 분야지만 요즘 소설 쪽 베스트셀러인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VS 남성이라는 이분법 사이에서 누구도 몰랐던 여성을 이해하고 싶은 남성 독자를 발견했듯이 말입니다. 독자의 발견이 의미 있는 건, 발견되면 실체가 되고 실체가 되면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지하고 다양한 목소리는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겠지요.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