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準국산 에너지’ 원자력은 수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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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한양대 교수 국제정치학

신고리 5, 6호기의 원자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고 공사 진행 여부를 10인 이내 공론화위원회의 판단에 맡기는 결정이 내려져 국내외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신고리 5, 6호기는 우리가 역사상 최초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APR 1400 원자로와 똑같은 모형이고, 1400이라 함은 140만㎾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중형급 화력발전소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대형 원자로를 의미한다.

지난 60여 년 한국 원자력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을 생각해 보자.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입니다. 한국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는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1956년 미국 디트로이트전력회사 월터 L 시슬러 사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조언한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철강·중공업·반도체 등 전기가 많이 들어가는 공장 가동을 가능케 했고, 이제는 UAE에 원자로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원자력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원자력이 돼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의 원전 수출 시장은 프랑스의 아레바와 일본 미쓰비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도시바, 그리고 미국의 GE와 일본 히타치의 3대 축이 호각을 이루며 경쟁해 왔다. 그런데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며 기염을 토했던 일본의 도시바는 미국에서 건설하던 원전 건설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파산에 내몰리게 돼 반도체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프랑스의 아레바는 핀란드에 원전을 건설하다가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도산(倒産) 위기에 내몰렸다. 또, GE와 히타치는 아예 원전 건설을 포기하고 핵(核)연료나 공급하는 경영 목표를 세우는 처지가 되는 바람에 원전 수출의 큰손들이 모두 다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은 원전을 또 한 번 수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한국 원자로의 강점은 무엇인가.

첫째, APR 1400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원자로다. UAE에 짓고 있는 APR 1400은 이미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와 같은 모델이고 검증된 원자로여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설계인증을 받을 예정이다. 설계인증이 나오면,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건설할 수 있는 기술 보증의 원자로다.

둘째, 가격 면에서 일본, 프랑스보다 싼 8조 원대에 수출할 수 있다. 따라서 자원은 없고 원자로가 필요한 나라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원자로다.

셋째, 건설 과정의 공급망이 탄탄히 준비돼 있다. 원자력 선진국들은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지만, 한국은 국내에서 신고리 3, 4호기뿐만 아니라 APR 1400을 UAE에서 짓고 있어 기술인력과 기술 그리고 부품 공급 등 건설 과정의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져 있다. 중국의 원자력은 한국만큼 값싸게 공급할 수 있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과연 안전할까’ 하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원자력은 국제 경쟁력이 우수하다.

원자력 산업은 이미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원자력 선진국들의 힘이 약해진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경제의 성장동력과 고용 창출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 배척당하는 원자로가 해외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 체감하지 못하는 지진까지 합하면 1년에 1만여 회의 지진이 발생하는 일본은 내진설계를 강화하며 원자력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유지하고 있다. 원자력은 자원이 없는 나라에는 준(準)국산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