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무역협회 무역센터 앞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에 비친 자신을 가리키면서, 1974년 제8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후 통상 전문 외교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되돌아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김종훈 前 통상교섭본부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했던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접이 달라지는 사람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미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당시만 해도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과 같은 영웅이었다. ‘검투사’라는 별명도 그때 생겼다. 그러나 정권이 보수 쪽으로 넘어가면서 그를 칭송하며 전면에 내세웠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깎아내렸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9년간 좌파 진영은 김 전 본부장을 광우병으로 오염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기 위해 나라를 팔아버린 ‘매국노’쯤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정권이 바뀌자 재(再)재평가가 시작됐다. 요즘 토론회와 언론에서 그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올해까지 5년간 대미 무역 증대 효과가 객관적 숫자로 입증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가 미국에 매우 불공정한 협상이었다”며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에서 한 것”이라고 자랑했다.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도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소위 ‘깡’ 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김 전 본부장도 인터뷰를 끝내고 허기를 달래려 6000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사 먹으면서도 “사람들이 ‘미제’만 좋아한다고 할 것 같아 신경 쓰인다”고 농담성 푸념을 했다. 좌우가 극렬히 대립하는 대한민국에서 외교관으로 소신 있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김 전 본부장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일 김 전 본부장을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의 비즈니스센터를 빌려 만났다. 사실상 야인이 된 탓에 언론에 공개할 만한 변변한 개인 사무실이 없었다. 무역협회는 지금도 김 전 본부장이 무역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라고 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국회의원 재선에 도전했다가 떨어져서 ‘논다’는 소문이 나니까 여기저기서 ‘같이 뜻을 모으자’는 연락을 해왔다. 모교인 연세대에서 강의를 1년 동안 했다. 강의가 쉬운 것이 아니더라. 일주일 3시간 강의를 위해서 하루종일 준비해야 한다. 대한체육회의 대외관계도 조언해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덕인지 언론을 통해서 김 전 본부장 이름을 자주 본다. 지금은 ‘매국노’라는 얘기 안 듣나.
“요즘 그런 얘기를 듣진 않지만(한숨). 정치가 다 그런 것이니까 옛날 얘기할 건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웬디 커틀러(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방한했었다. 만났나.
“행사장에서 만났고 따로 식사도 했다.”
―뭐라고 하던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한·미 FTA가 공격받는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말하더라. 트럼프 대통령이 하도 협상이 잘못됐다고 하니까 협상을 했던 본인이 힘든 모양이더라. 그런데 내가 공개적으로 “한·미 FTA는 윈윈”이라 말해준 데 대해 안도하고 고마워하더라. 한·미 FTA 재협상의 논거가 부족한데도 재협상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했다.”
―‘한·미 FTA 때문에 미국의 피해가 크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미국인이 많은가.
“그렇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과연 무역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살펴보려면 미국의 경제구조를 봐야 한다.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미국의 저축률을 왕창 올려야 한다. 저축률을 올리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다. 소비를 안 하면 수입이 줄어든다. 그러면 적자는 교정된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 경제가 그런 구조가 아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제조업 강국이 됐다. 이제 서비스로 넘어갔다. 미국사람들의 소득원은 자산 소득이다. 투자에 대한 이익, 자산이익, 자본이익, 이런 것이다. 단순히 상품 부문만 교정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 내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어떻게 관전했나?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은 첫 대면이 아니었나. 아무래도 급선무는 북핵 문제였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를 포착해서 ‘한·미 FTA로 손해를 많이 봤다, 손 좀 봐야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정상회담은 사전에 ‘어젠다 세팅’(의제설정)하고 진행하는 건데 이것을 넘어서는 이야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실히 작심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일단 공동조사부터 하자고 했는데, 잘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사람이 어디 아프면 진찰해서 병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그러한 과정이 없이 시작부터 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 된다.”
―미국은 정상회담이 끝나고 한·미 FTA 재협상을 얘기하고, 청와대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단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미국은 ‘스페셜 조인트 커미티’(special joint committee), 즉 ‘특별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재협상을 위한 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건 공동위원회다. 한쪽만 앉아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 우리랑 합의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미 한·미 FTA 협정문 안에 ‘조인트 커미티’, 즉 ‘공동위원회’라는 것은 내장돼 있다. 그 ‘조인트 커미티’는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열게 되어 있다. 수장은 장관급이고, 분과별로 논의할 수 있다. 소소한 컴플레인(불만)을 수시로 할 수 있다. 결국 공동위원회에 다 모여 최종적으로 한꺼번에,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평가할 수 있도록 해놨다. 그런데 미국이 협정문 안의 ‘커미티’를 의미한 것이라면 ‘스페셜’이란 단어를 안 붙였을 것이다. ‘스페셜’을 언급한 것은 저쪽(미국)에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재협상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인가.
“준비 단계로 봐야 한다. 재협상을 시작하려면 저쪽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와 이행 과정에서의 절차와 본질도 봐야 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엄청 강하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뱉어낸 말의 빈도나 강도가 너무 갔다. 강한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절차와 본질이란 무엇인가.
“미국엔 타국과 통상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내부의 절차가 있다. 통상의 권한은 미국 의회에 있다. 정부는 그 권한을 의회로부터 위임받는 것뿐이다. 우리한테 말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의회에 얘기해야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도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 절차가 90일이다. 90일 동안 의원 내지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 수렴된 의견을 가지고 의회로부터 위임을 받고 움직이게 된다. 우리와도 NAFTA와 비슷한 절차를 거칠 것이다. 공개 절차라 우리도 알 수 있다.”
―그럼 본격적인 재협상에 앞서 우리에게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은 있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그런데 미국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미국이 지금 바쁘다. NAFTA도 절차를 진행 중이고. 미국 행정부는 연말까지 NAFTA를 끝낼 각오다.”
―언제쯤 재협상이 시작될까.
“빠르면 올해 후반 시작해서 내년 중반쯤 돼야 한·미 간 본격적인 재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
―아직 준비 기간은 있다고 보면 되나.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근데 그 기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교 채널은 열려 있다. 상당한 기 싸움이 있을 것이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하는 식의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미국이 자동차와 철강을 문제 삼는 것 같다. 그런데 자동차와 철강은 한·미 FTA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냐.
“동의한다. 미국이 한국 내 자동차 시장을 개방시키려고 ‘슈퍼 301조’까지 발동하는 등 노력을 많이 했다. 지금 통계를 보면 한·미 FTA의 효과는 미국이 아니고 유럽이 누리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시장이 폐쇄돼서 미국의 자동차 수출이 어떻다, 이런 말은 못한다. 한국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60%가 안 된다. 나머지는 외국 브랜드라는 얘기다. 국내에 투자한 외국 기업 브랜드를 빼면 실제 수입하는 차는 34만 대 정도다. 이 중에 20만 대가 유럽 차다. 이 얘기는 한국시장이 폐쇄됐기 때문에 미국이 못 들어온다는 게 아니고 소비자들이 미국 차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개입해서 ‘유럽 차 사지 말고 미국 차 사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못한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 문제다. 문화일보가 지면에 ‘미국 차도 이제 괜찮다’고 실어줬으면 좋겠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재협상하지 않았나.
“그때 제일 큰 문제도 자동차였다. 당시 우리의 관세가 8%인데 미국은 2.5%였다. 미국은 2.5%인 관세를 안 내리고 4년간 유예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발효 이후 지난 4년 동안 우리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늘었다. 미국 관세가 안 내렸는데 말이다. 즉 한국차가 미국에서 잘 팔렸던 것은 FTA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미국 관세 2.5%가 0%로 내려간 것은 올해 1월 1일부터다. 반면 우리는 4년 동안 8%를 4%로 내렸고 이제 4%에서 0%로 내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시 ‘우리(미국)는 한국에 7000대를 팔고 한국은 미국에 70만 대를 판다’고 했다. 그 ‘7000대’가 이제 1만8000대가 됐다. 250%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수입차 34만 대 중 1만8000대니까 좀 아쉽긴 하다. 시장개방 노력은 미국이 했는데 그 과실은 유럽이 가져갔다.”
―자동차와 철강 말고 미국이 불만을 가질 분야가 무엇일까.
“미국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한·미 FTA의 어디를 고치면 트럼프가 얘기하는 무역적자가 수정될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다 한·미 FTA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FTA를 없애면 미국의 적자가 없어지나. 미국 정부기관의 발표를 보면 한·미 FTA가 없으면 적자 폭이 더 늘어난다고 돼 있다. 현재는 적자가 250억 달러인데 400억 달러로 늘어난다고 한다.”
―유럽 차 대신 미국 차를 좀 더 사주는 방법은 없나.
“미국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 특정 분야가 문제라기보다 무역 적자 폭 자체가 문제다. 과거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 문제로 협상했던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그때 미국은 일본에 ‘자율적으로 수출을 규제하라, 즉 알아서 덜 수출하고 알아서 더 사가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것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문제가 됐다. 그래서 없어졌다.”
―적자 폭 자체가 문제라면 미국의 무기나 셰일가스 등을 사 주는 것도 가능한가. 어차피 필요한 것들 아닌가.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 기업들 차원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시장이 크고 개방돼 있으니까. 실제 이번 방미에 기업인들이 꽤 동행했는데 셰일가스 수입 얘기가 많이 나온 것 같더라. 정부가 한번 협상해 볼 만한 것인지 점검을 해보는 게 우선이지만 미국으로선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막상 한국과 미국이 공동조사를 하면 미국도 할 말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미국이 저렇게까지 얘기해놨으면 없었던 얘기로 돌리기는 어렵다. 협상하는 사람들끼리 쓰는 말인데 ‘코스메틱(화장)’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은 살짝 화장이라도 하고 넘어가려 할 것이다.”
―어쨌든 보호무역주의 시대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한국은 무역을 통해 성장을 이뤘고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개방이 화두가 될 때마다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게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드는 데 약이 됐다. 그런데 현재 다자무역체제가 김이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 같은 보호무역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추가적인 자유화가 대두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도생으로 가는 것이다. 한 세기 이전의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나 세계에 좋을 것이 없다. 일단 세계는 다자무역의 룰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한국은 개방의 마지막 단계에서 FTA라는, 가보지 못한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이 만들었던 FTA는 ‘윈윈’의 결과를 보였다. 한·미 FTA도 예외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미국 시장이 커서 우리가 큰 이익을 얻었고 우리 시장이 작으니까 결과적으로 미국이 얻은 이익이 작다는 것 때문 아닌가. 이것을 수정하려면 우리 시장이 커지면 된다. 미국의 불만을 없애려면 우리 시장을 키우는 것, 그것밖에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무역협회 무역센터 앞에 설치된 ‘무역 1조 달러 달성’ 기념 조형물 앞에서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5주년인 올해 한국은 3년 만에 무역 1조 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미국이라는 나라와 협상할 때 조심할 부분이 있다면.
“협상의 선두에 있는 사람이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나다. 그런 압박과 긴장의 순간에 정신을 놓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깡’이 있어야 한다. 본인의 심지가 있어야 한다. 영어가 국제 공통 언어이기 때문에 협상도 영어로 한다. 우리가 영어로 협상하게 되면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핸디캡(단점)이 있다. 영어가 능수능란하지 않더라도 ‘클리어’(명확)하게 얘기해야 한다. 가끔 상대가 협상 중 영어로 된 장문의 제안서를 던져넣고 우리 반응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뭐라고 영어로 설명을 한다. 처음 보는 영문 서류를 읽으면서 동시에 듣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당황하기 일쑤다. 그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고 ‘브레이크(휴식)’를 외쳐야 한다. ‘좀 쉬자’고 하면서 꼼꼼히 봐야 한다. 충분히 준비되고 생각을 간추려서 대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통상 분야는 외교부가 다시 가져가는 것이 맞지 않나. 통상교섭본부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13년 초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통상교섭본부를 ‘외교’에서 떼어내 ‘산업’으로 넘긴다고 밝혔을 때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부로 다시 온다기에 ‘잘됐다’ 싶었는데, 지금 진행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외교부 통상 쪽 후배들을 만났는데 힘이 많이 빠져 보이더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다뤄지지 않았지만, 애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해 우려가 있었다.
“사드는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고 절차상 좀 늦어지냐, 빨라지냐의 상황인데 이것 때문에 한·미 동맹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다. 미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에 가서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한 것은 잘했다.”
―양국 정상 공동 발표문을 보면 미국이 한국의 남북대화의 의지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북핵 문제는 전반적으로 제재 국면으로 가야 한다. 유엔 제재와 중국 역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공동 발표문은 분명히 제재 일변도보다 대화도 해보자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동안 대화의 결과가 효과가 있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과연 이번엔 대화의 효과를 만들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우리 정부의 기대대로 정말 미국이 대화의 주도권을 한국으로 넘긴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시도나 해봐라’ 이런 뜻으로 봐야 하나.
“양면이 있다. 지금까지의 대화 효과는 누가 봐도 부정적이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노력해보고 또다시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면 더 강한 제재로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북한도 잘해야 한다. 이번 대화에서도 ‘깽판’치고 엉뚱한 짓 하면 북한은 이젠 정말 갈 데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북한은 곧바로 보란 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래도 남북문제에 있어 이해당사자는 우리다. 대한민국인 것은 분명하다. 일단 남한테 맡기지 않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보겠다는 것은 좋은 시도다. 다만 대화가 효과 있게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국면이 더 갈 데가 없다. 북한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대화의 시한은 길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의 인내도 길 수는 없지 않을까.
“미국에 한국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안보가 최우선이다. ICBM 기술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이 된다면 미국이 더 인내할 수 없다. 그게 언제까지냐가 중요한데, 북한의 기술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앞서가고 있다. 내년 중반이면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본다. 즉 1년 안에 대화의 효과가 없으면 미국으로서도 참기 어렵게 된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양국 정상의 공동 발표문엔 남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서 ‘올바른 여건 아래(under the right circumstances)’라는 문구를 포함했다. 무엇이 올바른 여건이냐를 놓고 한·미가 이견을 보일 가능성은.
“유엔이 제재하겠다는데 우리가 역행해서 대화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국제사회에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또 북한의 독재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돼야지, 북한의 독재정권과 북핵에 대한 지원이어선 안 된다.”
―한국이 6자 회담의 복원을 시도하는 것 아닌가.
“6자 회담 체제는 끝난 것 아닌가. 6자 회담의 효과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장사와 흥정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시각에 불만이 엄청나다. 우리 내부의 한·미 동맹파들도 안보 때문에 약점을 보여서 미국으로부터 이런 대우받는 것인가 하는 목소리가 있다. 미국을 향해서도 이러한 점이 장기적으론 한·미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보나.
“사드 같은 장비를 공개적으로 배치해야 하나. 우리 군 내부에 레이더 기지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을 설치할 때마다 국민과 다 합의를 볼 수는 없다. 이런 논란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이 전례 없이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한·미 동맹의 이름으로 같이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 없이 사드를 반대하면 안보의 ‘가드(방어 자세)’를 내려놓자는 것이다.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 과정에서 국회 논의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가 미흡했다는 주장을 한다.
“절차를 다 거치면 좋겠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국제 협정에선 안보에 대한 예외는 늘 규정해 왔다. 북핵으로 안보가 위협받는데 ‘룰’이나 절차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뒤집으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한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미국이 동맹을 믿고 배치하려 했던 사드를 다시 가져가게 한다면 한·미 동맹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일 간 위안부 합의도 뒤집히고 있다. 외교 협상가로서 지난 정부의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나.
“사실 위안부 문제는 돈 문제로 볼 성질이 아니다. 국민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일본은 물론, 과거에 사과 다 했다고 한다. 결국 진정성 문제다.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사과한 기록만 있어선 안 된다. 기록이 역사로서 후세에 가르쳐져야 한다. 일본의 학교에서 교육이 돼야 한다. 과거 일제에 의한 위안부라는 게 있었고 일본 정부가 담화로서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다는 점을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교육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족하다고 본다.”
―일본이 받아들일까.
“받아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핵이라는 난제 앞에서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로 다투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글쎄. 아는 정보가 없다. 그랬을 것으로는 짐작은 되는데 ‘팩트’가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비 외시 출신 장관이다. 어떻게 보나.
“외교부 장관은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다. 우리나라 국민 중 정부의 위임장 없이 해외에 나가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다. 국무총리도 한국을 대표해 문서에 사인하려면 대한민국 정부의 대표라는 위임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외교부 장관의 무대는 국내가 아니고 나라 밖이다. 강 장관의 출신 문제를 따지기보다 밖에서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맞는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됐다. 외교와 통상 쪽에서 잘하고 있다고 보나.
“이제 시작이다. 평가하기가 그렇다. 지켜보고 응원하고 싶다.”
인터뷰 = 김만용 차장(경제산업부) mykim@munhwa.com
정리 =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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