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개그맨 이홍렬 “실수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골프는 5시간짜리 생방송”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개그맨 이홍렬 씨가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 남서울골프장 9번 홀 그린에서 짧은 퍼팅이 들어가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개그맨 이홍렬(63) 씨는 생방송과 골프는 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씨는 “골프는 5시간의 생방송과도 같다”며 “실수는 물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골프”라고 정의했다. 1979년 TBC 라디오 프로그램인 가요대행진의 MC로 방송에 데뷔한 이 씨는 올해 38년 차 개그맨이다.

지난달 29일 이 씨를 자택 근처 남서울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이 씨는 4년 전 ‘골프 8학군’으로 불리는 경기 성남의 판교신도시로 이사 왔다. 이 씨는 “40년 가까이 방송 생활을 했기에 이젠 후배들에게 ‘구봉서 선생님급’ 선배가 됐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 1월 JTBC ‘슈퍼맨을 만나다’ 프로그램 이후 방송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지금은 아카데미나 CEO를 상대로 ‘즐겁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강의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지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준비하고 있고, 10월에는 연극무대에 설 예정이다.

이 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떻게 하면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며 “우선 나 자신부터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을 나올 때, 가족들에게 인사할 때는 늘 “즐겁게 지내야 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남을 즐겁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나눔과 봉사. 1986년 기부하면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었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98년 홍보대사를 맡았으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월평균 서너 차례의 콘서트 진행, 모금 캠페인 등에 참여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한 달 동안 국토종단을 하면서 3억 원을 모아 자전거 2600대를 구입,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이 씨는 국토를 종단하면서 몸은 극한의 고통을 느꼈다”며 “하지만 마음은 즐거웠기에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미국에 머물던 1999년 골프와 만났다. 어느 날 라디오 방송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에 나와야 할 후배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골프 때문에…”라는 답이 돌아왔다. 괘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날 오히려 그 후배에게서 “아직 골프에 입문하지 않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리고 골프 예찬론을 펼친 후배에게 이끌려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스윙이나 배우자며 후배의 지도를 받다 두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골프장에 나갔다.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골프장이었는데 초록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장관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골프를 값싸게 즐기지 못했던 게 후회됐고, 이렇게 좋은 곳을 자신을 따돌린 채 누비고 다닌 후배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골프 실력을 묻자 이 씨는 “몸 IQ가 30쯤 되는 것 같다”면서 “타고난 몸치에다 연습마저 거의 하지 않기에 내세울 만한 실력은 아니다”고 말하며 몸을 사렸다. 한 매체에 서아람 프로와 함께 ‘이홍렬 100타 탈출’을 연재했다. 골프 기량을 끌어올릴 기회였고 그렇게 기대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서 프로가 “징그럽게 (실력이) 안 느네요”라며 혀를 찼단다. 이 씨는 “기량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골프의 참재미를 느끼는 계기는 됐다”고 말했다.

이 씨의 베스트 스코어는 82타. 경기 용인의 코리아골프장에서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문 골프모임 ‘예우회’에서 작성했다. 이 씨는 1987년 33세의 늦은 나이에 중앙대에 진학했고, 그래서 10세 이상 어린 선배가 많다. 그날 동반자들은 마지막 홀을 앞두고 이 씨에게 핸디캡 한 자릿수인 81타(9오버파)만 나오더라도 싱글로 인정해 패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했다. 이 씨는 “내심 동반자들의 ‘기브’를 기대하며 눈치를 봤는데 외면당했다”면서 “1m 남짓한 파 퍼트를 놓쳤다”고 설명했다.

40대 중반을 넘겨 골프를 시작했기에 이 씨가 지금까지 80대 스코어를 남긴 건 손에 꼽는다. 90대에 진입하면 ‘생큐’. 어쩌다 80대에 진입하면 캐디에게 후한 팁을 건넬 정도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10년짜리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 만기가 될 때까지 홀인원을 한 번도 못했고, 그 대신 동반자의 홀인원은 두 차례 목격했다. 그중 한 번은 ‘인간 복사기’ 최병서 후배와의 라운드였다. 이 씨는 골프모임이자 ‘전설의 입담꾼’이 즐비한 G2(개그+개그 감)회에 자주 나간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후배 17명과 함께 있으면 ‘천하의 이홍렬’이 말 한마디 못하는 날이 많단다.

돈 잃는 걸 좋아하는 이는 없다. 이 씨는 골프 재미를 배가시키고 돈은 크게 잃지 않는 내기 방법을 고안했다. 그와 동반했던 사람들은 ‘이홍렬 룰’이라고 부른다. 1인당 12만 원씩 걷어 뽑기나 스킨스게임을 한다. 물론 회계는 그가 맡는다. 일단 6만 원을 보장하기에 캐디피를 제하면 많이 잃어도 3만 원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후반 파 3홀에서 온그린을 못하거나 온그린 후 보기를 하면 1만 원씩 벌금을 낸다. 마지막 18번 홀은 ‘묻지마 룰’을 적용한다. 캐디에게 2만 원의 팁을 미리 건넨 뒤 거리, 퍼팅 라인 등의 질문에 대답하면 1만 원을 돌려받는다. 10명의 캐디 중 9명이 무심코 습관적으로 대답한다. 캐디 역시 좋다가 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즐겁게 라운드를 마칠 수 있다. 마지막 홀에서는 그린에서도 마크할 수 없어, 홀 앞에서 남의 볼을 맞히는 변수가 있다. 내기하고 남은 스킨은 홀에 모두 넣고, 가장 먼저 홀아웃하면 돈의 주인이 된다.

이 씨는 “남이 웃겨주길 바라면 안 되고, 스스로 행복을 가꾸어야 하고, 즐거운 일은 매일매일 일어나지 않지만 즐거운 일을 매일매일 만들 순 있다”며 “골프는 그 자체로 즐거운 일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성남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