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남북합의 ‘선별적 법제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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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이 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이번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5가지 정책 기조와 4가지 구체적 대북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

우선, 정책 기조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 체제 보장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을 제시했다. 나아가 남북한 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경제지도’ 구상과 인도주의적 문제는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서 추진할 것을 제의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와 함께 오는 10월 4일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남북한 적대행위 중지, 남북한 당국 간 대화의 재개 등 4가지를 구체적 방안으로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이번 선언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언을 ‘한반도 평화구상’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선언 발표 바로 직전에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이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더욱 강력한 대북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 시점에 나온 이번 평화 구상은 국제 공조에 역행할 뿐 아니라 견고한 대북 제재 전선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이밍의 문제가 있다. 또, 이 선언은 ‘켈로그-브리앙조약’과 ‘뮌헨협정’처럼 ‘평화’를 수차례 강조하고 있을 뿐 정작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과 수단은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이번 선언이 제시하는 북한 체제 보장과 북한 비핵화는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 북한 정권에 핵무기는 군사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무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해 5월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당규약에 ‘핵보유국’을 명시하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 기조를 내세운다는 것은 대내외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구상의 특이한 점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지금까지 이뤄진 ‘남북 합의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 합의 외에도 1992년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도 있다. 그렇다면 비핵화 선언도 법제화 대상으로 당연히 포함돼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어기고 핵 개발을 한 상황에서 비핵화 선언을 법제화해 남북관계의 선행 조건화한다고 하면 문 정부가 추진하려는 남북관계 개선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정부가 비핵화 선언은 빼고 선별적으로 기존의 남북 합의를 법제화하려는 ‘법리주의적 발상’은 심각한 국론분열을 불러일으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선언의 또 하나 우려할 부분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핵 협상에 평화협정 체결을 어젠다로 추가하겠다는 것으로, 북핵 폐기 협상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 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의 빌미를 북한에 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번 선언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현실적 인식과 그 구체적 해결 방안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국제 공조를 통한 제재 국면과 대화 국면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