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에 밀린 한국畵, 살아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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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한국화의 역사’ 展

작년 경매 낙찰 작품판매액
서양화에 비해 턱없이 낮아

서구 중심주의 교육·정책에
수묵채색화 등 현장서 배척

“한국화 100년 역사 재조명
부흥위한 기회 마련됐으면”

20세기 한국화를 대표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서울 종로구 홍지동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2017년 기획전시로 ‘20세기 한국화의 역사’전을 준비하며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24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설문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20세기 한국화를 대표하는 작가 명단이다. 1· 2· 3위를 이응노·박생광·송수남 화백이 차지했고, 4위에 이상범·변관식·김기창·천경자·서세옥, 5위에 박래현·권영우·황창배 화백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 한국화를 대표하는 이 작가들이 화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떨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작품가격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실시된 경매회사의 낙찰총액 상위 20명 명단에 위에 언급된 작가 중 이름을 올린 이는 천경자(5위)-서세옥(13위)-이상범(17위)-권영우(19위) 화백뿐이다. 낙찰가 상위 그룹엔 김환기-박서보-정상화-이우환 화백 등 서양화가들이 포진해 있다.

‘한국화의 위기’가 그동안 꾸준히 거론돼 온 가운데, 한국화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 판매액으로 화단에서의 영향력을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미술애호가들의 선호도를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0년 4월 21일 신세계화랑에서 개막한 ‘이당 김은호 선생 회고전’ 팸플릿에 실린 그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구한말을 거쳐 한 세기가 넘는 동안 ‘한국화의 정체성’을 위해 수많은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왜 여전히 ‘위기’란 수식어가 달려 있는 것일까.

7일 개막한 이번 전시를 전후해 한국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국화의 위기는 사실 개념 정립조차 안 된 사실에서 출발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한국화는 근대 이후 한국에서 발달한 동양화를 일컫는 말’로 설명돼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1950년대 말 대만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중국화도 일본화도 아닌 한국인만의 그림이란 뜻에서 사용되기 시작, 아직까지도 그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미술평론가 최열은 “서구 중심주의에 의한 정책과 교육에 따라 수묵채색화는 현장에서 철저히 배척당했고 그 결과 국민 미의식의 편향과 왜곡으로 귀결됨에 따라 미술시장에서 외면당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윤범모 동국대 미대 석좌교수는 “지필묵의 장점을 새롭게 조명하고, 특히 한민족의 색채의식을 재조명해 채색화의 현대화와 국제화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1일까지 계속되는 기획전에는 20세기 한국화와 관련한 주요 전시 팸플릿, 단행본, 전시 기사, 포스터, 사진, 작품 등 다수의 소장 자료가 전시된다. 전시되는 주요 자료는 ‘고암 이응노 동양화개인전람회 목록’(1949년)과 ‘제1회 묵림회전’(1960년), ‘이당 김은호 선생 회고전’(1970년), ‘동양화 여섯분 전람회’(1971년) 팸플릿을 비롯해 한국화 작가 10명에게 실시한 ‘작가에게 묻는다’ 친필 답변서와 강행원, 곽정명, 금동원, 김근중, 김선두, 김영기, 김정현, 김진관, 김천영, 김호석, 김흥종, 문봉선, 박대성, 사석원, 서정태, 성태훈, 송수남, 임태규, 오용길, 우종택, 유지원, 이철량, 정종미, 조평휘, 조환, 허건 등의 작품 및 김은호의 드로잉, 이상범의 삽화 30여 점이다.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물을 단행본으로도 출간한 김달진 관장은 “개항과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계승, 분화와 변용 속에서 경계의 확장과 담론의 다양화를 위해 노력해 온 한국화 100여 년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라며 “한 세기 동안 한국화의 주요 전시와 흐름을 정리하고 전망을 가늠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 부흥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02-730-6216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