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9.26 화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11일(火)
내 경험이 네 공감과 만나는 행복… 美와 善의 길은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④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내가 일하는 곳의 창가에는 능소화 줄기가 여럿 지나간다. 해마다 푸르고 무성한 그 잎들이 보기에 좋았는데, 벌레가 생긴다고 하여 몇 해 전에는 하루아침에 다 잘려나갔다. 그러다가 재작년이던가, 다시 누군가 심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심은 것이 어느새 자라나서 3층인 이곳까지 올해에도 그 잎이 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매주 초면 보게 되는 그 푸른 잎들을 나는 마치 친구라도 되는 양, 기꺼이 반겼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크고 작은 벌레들이 점점 더 많이 드나들지만, 어쩌랴, 사람 사는 곳에 벌레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사람 자체가 한 마리 벌레이기도 하다.

방학 때면 학교에는 가끔 나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능소화는 여기저기의 줄기에서 풍성하게 피어있다. 싱그러운 잎사귀는 그사이에 몰라보게 짙어져 있다. 나무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제 할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고, 향기가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 아름다움을 ‘좀 더 엄밀하게 규정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 미를 둘러싼 물음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것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주제나 개념과 관련되고, 삶의 여러 차원에 걸쳐 있으며, 나아가 갖가지 범주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미)은 인식적 차원(진리)이나 도덕적 차원(선)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아름다움의 경험에서 나와 너, 주체와 대상은 어떻게 관계하고, 감성과 이성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감성에는 순수감각적 요소만 있는가, 아니면 논리나 이성의 차원도 겹치는가? 또 미는 예술작품에만 해당되는가, 아니면 자연에도 나타나는 것인가? 예술미와 자연미는 어떤 뜻을 갖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물음이 진선미의 여러 차원을 포괄하면서 미 자체의 독립성, 나아가 미에 대한 ‘감각적 지각의 독자적 지위’를 고려하는 데까지 나아갈 때, ‘미학’은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학문분과로서 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1750년 A G 바움가르텐의 ‘미학’이 출간되던 무렵의 일이다.

우선 구분되어야 할 것은 아름다움과 예술이다. 미는 플라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높은 가치’로 간주 된 반면, 예술은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에서 보듯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미는 자연미나 예술미라는 말에서 보듯이 예술보다 더 넓은 범주다. 예를 들어 이마누엘 칸트는 자연미가 예술미보다 우월하다고 여겼지만, 헤겔은 자연미를 무시하였다. 헤겔 미학은 대부분 예술의 역사를 논한 것이다. 그러나 미학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나 문헌학적 주제는 잠시 제쳐 두고, 미의 문제 그리고 이 미의 경험이라는 문제에 집중하여 보자.

아름다움은 왜 아름다운 것인가? 어떤 사물이나 풍경 혹은 사람의 모습이나 행동이나 말, 아니면 소설이나 영화가 ‘아름답다’고 할 때, 그 근거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미학사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을 준 사람은 칸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주관적 보편타당성”

칸트는, 잘 알려져 있듯이, 아름다움을 판정하는 일을 ‘취미(Geschmack)’라고 불렀고, 취미능력이란 대상의 어떤 특질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나(주체)의 ‘쾌’ 혹은 ‘불쾌’의 감정과 관련된다고 보았다.(이 때문에 그의 미학은 근본적으로 ‘주관주의적’이라고 평가된다.) 내가 무엇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대상 자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 느낌에 따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주관적 요소가, 칸트의 통찰에 따르면, 그저 주관적인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차원을 넘어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요소를 지닌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것은 ‘나’에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너’와 ‘그들’도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의 감정은 개인적 호불호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무엇이다. 이것을 칸트는 ‘판단력 비판’(1790년)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흡족한 것은 아름답다.”(9장) “개념 없이 필연적인 흡족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름답다.”(22장)

왜 개념이 필요 없는가? 개념은 철학적 논리적 논증적 사안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것은 나/개인/주관에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모르는 그들이나 그 누군가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것이 아름다움의 ‘주관적 보편타당성(subjektive Allgemeingultigkeit)’이다. 그래서 미의 경험은 나의 즐거움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리-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잇는 고리에서 칸트는 ‘공통의 감각(sensus communis/Gemeinsinn)’을 본다. 상식(common sense)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의 경험은 주관적 체험 속에서 이 개별적 차원을 넘어 공동의 상식을 넓혀가면서 보편적 지평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 그 자체로 흡족한 것만 아름답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에는 아무런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 화단에 심은 화초는 물론 그것을 심은 사람이 그 나무와 꽃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화초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그냥 피어나는 것일 뿐이다. 산과 들녘에서 자라나는 식물 또한, 그것이 아까시나무든 진달래든, 철쭉이나 라일락이든, 아무런 뜻 없이 ‘그저 피어난다’. 그것은 그냥 피었다가 대개는 아무런 주목이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때가 되면 원래대로 시들어간다.

이런 꽃과 나무와 잎을 보고 경탄하는 것은 사람의 관점이지 나무의 마음이 아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뜻과 아무런 관련 없이 때가 되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이운다. 그러면서 꽃은, 이 꽃을 바라보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면서도 이러한 주관적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 될 만하다. 이것을 칸트는 ‘일반적 동의를 요청한다’고 표현한다. 그리하여 미와의 만남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립된 순수주관적 영역을 넘어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접촉하게 된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확장과 심화의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미의 경험에 기대어 기존의 감각과 사고의 지평을 더 넓고 더 깊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미’의 경험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추’나 ‘악’의 경험에도 들어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인간의 삶은 대략 1800년을 전후하여 근대화되면서 급격하게 산업화-도시화-과학화된다. 생활의 영역은 다양하게 분화되고, 노동은 소외되면서 인간의 경험은 궁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사회는, 간단히 말해, 충격과 전율, 속도와 파편화로 특징지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된 추나 악, 끔찍함이나 경악 같은 범주가 근대에 들어와 점차 더 주목받게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우리는 aesthetic을 흔히 ‘미적’이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이것은 ‘미를 검사하고 판정하는 일과 관계되는’이라는 뜻에 가깝고, 따라서 ‘심미적(審美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그래서 aesthetic experience는 단순히 ‘미적 경험’보다는 ‘심미적 경험’이 옳지 않나 여겨진다. ‘심미적’ 요소에는 미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추와 악, 경악과 공포까지 포괄되기 때문이다. 심미적 현상에서 미만 강조하는 것은 현대 이전의 현상이다. 따라서 ‘미의 경험’보다는 ‘심미적 경험’이라는 말이 오늘의 삶에서 더 잘 어울리는 술어로 보인다. 그리하여 현대의 우리는 미추 같은 잡다한 것의 경험 속에서 미의 어떤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 미의 길과 선의 길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미는, 아무런 목적이나 이해관계 없이, 나의 주관적 느낌으로부터 시작하여 보편적 차원에까지 걸쳐있다. 미의 경험이 즐거운 것은 그것이 나의 것이면서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나의 경험이면서 우리의 경험일 수 있다. 그래서 ‘보편적 동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이면서 나를 넘어서는 경험이고, 나 속에서 타자와 만나 교유하면서 나를 넓혀가는 확대된 경험이다. 미의 경험은 선한 것(the good)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실천이기도 하다. 칸트 윤리학의 핵심-개인의 ‘주관적 준칙(Maxime)’이 ‘보편적 법칙(Gesetz)’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정언명령도 이것과 닿아있다.

그러므로 미(美)의 길과 선(善)의 길은 결코 둘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윤리는 함께 간다. 나 속에서 타자를 만난다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좀 더 높은 진실로 나아간다는 뜻이고, 나를 넓혀간다는 것은 좀 더 도덕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뜻이다. 참된 미의 경험에는 보다 높은 이념으로의 윤리적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성(Humanitat)이란 한편으로 보편적 참여의 감정이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절실하고도 일반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런 특징들이 합쳐져 행복을 구성한다”고 칸트는 적었다.(60장) 좀 더 높은 삶의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인간성에 참여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보편적 인간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인간성에 참여하는 행복한 일인 것이다. 보편적 참여 없이는 진정한 행복도 없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단순히 예쁘고 착하며 쿨하고 날씬한 게 결코 아니다. 참된 아름다움에는 감각적 자극의 차원을 넘어 인간성의 보편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움직임이다. 이 이행 속에서 주체는 자신의 결함과 미비를 끊임없이 교정하면서 그 너머로 나아간다. 주어진 것으로부터 그 너머로,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자유로’ 옮겨가는 것은 그런 대목에서다. 자유로의 이 이행은 쇄신의 에너지에서 온다.

능소화가 아름다운 데는 별다른 뜻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 꽃과 잎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렇게 느끼는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움직임-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려는 보편적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는 더 나은 것을 지향하기에 윤리적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삶을 쇄신하려는 이런 윤리적 노력 때문이다. 우리는 반성적 노력을 통해 삶의 본래적 생기를 복원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생기를 복원하는 것, 그래서 매일 매 순간을 삶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말의 깊은 의미에서 아름다운 것이다. 미의식의 현실적 관련성이나 사회정치적 의미도 여기에 있다. (문화일보 6월 13일자 25면 3 회 참조)

충북대 교수
[ 많이 본 기사 ]
▶ ‘중학생 제자와 性관계’ 40대 여교사, 고교생과도…
▶ 18년간 30명 이상 살해해 먹은 ‘식인 부부’ 체포
▶ ‘어떻게 내 아내와’···술자리서 성관계한 지인 폭행 살해
▶ 서울市공무원들 ‘부글’… “내부부터 추슬러야”
▶ 美 “북핵 완전해결할 4~5가지 시나리오 검토중”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안종범 “수첩 내용 100% 朴 전대통령 말씀 적..
topnews_photo 안종범 前수석 ‘삼성합병 의혹’ 재판 증인 출석박근혜(65) 전 대통령이 홍완선(61)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구체적인 이름을 ..
mark‘중학생 제자와 性관계’ 40대 여교사, 고교생과도…
mark서울市공무원들 ‘부글’… “내부부터 추슬러야”
美 “북핵 완전해결할 4~5가지 시나리오 검토중..
‘금값 된 송이’ ㎏당 120만원…봉화 송이축제 ..
“故김광석 팬들 열광할수록 그의 아내가 돈 번..
line
special news 아이유 “새 앨범에서 ‘故 김광석 노래’ 뺍니다..
아이유, 10월로 출시 연기 “듣는 분들 불편할 것 같아…”“듣는 이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

line
“대통령도 노사정委 참여해라” 노동계 배짱요..
박원순 시장 “직원 극단적 선택은 제 책임” 공..
與 “사자방 수사” 野 “노무현 특검”… ‘과거와의..
photo_news
18년간 30명 이상 살해해 먹은 ‘식인 부부’ 체포
photo_news
“어차피 욕먹을거 데뷔”…탑과 대마초 피운 연습생 거침없..
line
[연재소설 徐遊記]
mark(1217) 59장 기업가 - 10
illust
[인터넷 유머]
mark결혼식 하객 예절 3
mark결혼식 하객 예절 2
topnew_title
number 초등생 딸 수년간 성폭행 ‘인면수심’ 아버지..
브라질 여행가면 ‘벼락 조심’… 年 8000만번..
‘해운대구’ 상승률 최고…‘서울~세종 고속도..
“강남권 재건축에 우리 브랜드 꽂자”… 10大..
‘어떻게 내 아내와’···술자리서 성관계한 지인..
hot_photo
강용석, 故김광석 부인 서해순씨..
hot_photo
UFC ‘마에스트로’ 김동현, 고미에..
hot_photo
상가 돌진한 음주운전 에쿠스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