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블라인드 人事, 강제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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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주 이화여대 교수 행정학

정부는 최근 관계 부처 합동으로 입사 지원서에 출신 지역, 가족 관계, 키, 체중 등 신체적 조건과 학력 등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을 삭제하고 직무 중심으로 평가, 선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올 하반기부터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권고 수준이었던 내용을 의무화하고 민간에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번 정책 도입 취지는 환영할 만하다. 가족 배경이나 출신 지역, 성별 등 귀속적 요인들이 개인이 오랜 기간 학습과 노력을 통해 획득한 능력·역량·잠재력 등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 편견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고용에 있어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여성은 원래 그렇다거나, 어느 지역 출신은 원래 어떻더라 등 근거 없는 사회적 정형화는, 채용 시 잘못된 선입견으로 작용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다문화사회로 가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서 편견의 영향을 최소화해 계층 간 갈등 완화와 국민통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세밀하게 검토할 부분이 많아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또는 졸업 이후 공공기관에서 요구했던 다양한 스펙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갑작스러운 채용 방식의 변화는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차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금지 조항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에, 어떻게 해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줄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취업에 성공할지 불확실성이 커졌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벌써 또 다른 스펙이 요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하는 지방 인재의 정의도, 서울 출신으로 지방 대학을 다니는 경우와 지방 출신으로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역차별의 소지가 있다.

인재를 채용하는 입장에서도 기관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면서 정부 정책을 어떻게 반영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지를 고민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직무 중심으로 선발하는 것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대다수 공공기관은 계급제로 운영되므로 채용 이후에는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직무 전문성과 잠재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따라서 특정 직무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를 활용해 잠재력이 풍부한 인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 입시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취업 준비생의 입장이나 공공기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예상되는 시행착오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블라인드 채용을 민간에 확대하는 것은 민간의 자율성 및 시장 선택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차별의 철폐라는 사회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 민간 기업의 자율적인 선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선을 실현하려는 정책적 고려와 시장의 자율성 사이에 현명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