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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12일(水)
日帝 ‘모더니즘 건축’이 지금은 ‘市民의 소리 듣는 공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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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태평로 전경. 대로 왼쪽 호텔 건물 바로 옆에 옛 부민관 건물인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이 있고, 오른쪽 정면에 경성부청으로 출발했던 옛 서울시청 건물과 그 뒤로 서울시 신청사가 보인다. 사진작가 김용관 제공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 ④ 옛 서울시청 본관과 옛 부민관

■ 옛 서울시청
1926년 ‘경성부청’ 이름으로 日帝가 서울 한복판에 터잡아
위압감 없애 누구나 접근하게… 현재 서울도서관·시민청으로

■ 옛 부민관
결혼식 등 행사장 기획됐지만 폭탄투척 의거 등 ‘역사의 場’
국립극장·국회의사당에 이어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로 활용


지방자치제도가 자리 잡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건축은 단연코 시 청사와 시 의사당이다. 서로 마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태평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건물은 경복궁과 북악으로 시선을 돌리면, 북악을 배경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조성된 이후 북악은 600년이 넘는 서울의 역사를 품에 안고 있다. 대한제국이 황토현을 깎아 오늘의 세종대로를 만들면서 연장된 광화문에서 대한문에 이르는 거리에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농축돼 있다.

근대국가 건설의 의지를 안고 광무황제(고종)가 처음 개설한 길이 일제강점으로 운명이 달라졌다. 1926년 경성부청사(현 서울시청)가 신세계백화점 위치에서 현 위치로 옮겨오고, 그해 남산의 애니메이션센터에 위치했던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 새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남산에 있던 무학대사를 모신 국사당이 일제에 의해 인왕산으로 옮겨지고 성곽이 지나가는 남산 중턱의 능선이 깎이고 조선신궁이 세워졌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20년을 넘어서면서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대한문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던 중심축이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 그리고 남산의 조선신궁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해방 후에 새로운 풍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남산에서 북악과 총독부청사 그리고 경성부청사를 바라보면 북악의 산세와 두 건물의 조합이 대일본(大日本, 북악의 산세 = 大, 총독부 = 日, 경성부청 = 本)이라는 단어로 읽힌다는 것이었다. 근거 없는 말이지만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통용됐다. 이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도성의 상징체계가 일본의 철저한 계산으로 파괴됐다는 일반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제강점기 당시의 태평로. 왼쪽에 부민관이 보이고 오른쪽 벽체는 경성부청 건물의 일부다.

1926년은 일본의 한국 지배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식민지배를 위한 인프라가 완비되면서 지배가 더욱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경성부청의 건설이 전환점의 중심에 있고, 종합문화시설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은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전환된 식민지배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시민회관으로 지어진 부민관은 옛 건물 그대로 서울시의회가 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경성부청은 오랫동안 서울시청사로 사용됐지만, 현 시청사가 2012년에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 쓰는 이야기는 옛 서울시청 본관(현 서울도서관)과 옛 부민관에 관한 것이다.

1897년 조선의 수도에서 대한제국의 황도가 됐던 한성부는 1910년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경기도의 일개 도시로 위상이 격하됐고, 이름도 경성부로 바뀌었다. 한성부청으로 불렸어야 할 이름이 경성부청이 된 이유다. 그러나 옛 서울시청 본관은 경성부의 첫 번째 청사가 아니었다. 최초의 경성부청사는 1895년 7월 조선정부 하에서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졌던 건물이었다.

현 신세계백화점 위치에 세워졌던 일본영사관이 1905년 을사늑약을 거치며 행정권을 가진 이사청(理事廳)으로 바뀌었고, 1910년 강제병합 후 경성부청사가 됐다. 현 서울시청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26년이었다. 이에 앞서 1912년 이미 덕수궁의 동쪽 궁장(宮墻, 궁의 담벼락)이 잘리며 태평로(현 세종대로)가 직선화됐고, 옛 서울시청사 앞에는 광장이 조성돼 있었다. 새로 옮겨간 경성부청 앞 광장은 물리적인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태평로, 을지로, 소공로와 서소문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가 됐다.

경성부청은 조선시대에 무기를 제작하는 공장인 ‘군기시(軍器寺)’가 위치했던 곳에 지어졌다. 현재의 신청사가 지어지면서 군기시 터의 포와 화살 등 많은 유구가 발견되어 신청사에 건물 터와 유구의 일부가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과 함께 군기시 터에 지어진 첫 건물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 사옥이었다. 도시 규모가 팽창하면서 서울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했던 경성부청을 새로 옮겨 짓는 계획을 세우고, 선택한 신청사의 입지가 경성일보사 자리였다. 물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면서 간선도로가 집중되는 중심성 그리고 경성부청에서 조선총독부에 이르는 새로운 경관축의 형성이 입지 선정의 이유였다. 경성일보사는 자신의 땅을 경성부청에 내주고 현 한국프레스센터로 이사했다.

1926년에 경성부청이 현 위치로 이전하고, 동시에 경복궁에 조선총독부청사가 건축되면서 서울의 도시구조가 크게 변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했던 식민지배의 심장부인 총독부가 도성의 중심인 경복궁에 자리 잡으면서 식민지배 중심이 바뀌었고, 경성부청이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경성부청 터에는 일본의 최고 백화점인 미쓰코시(三越)백화점과 조선저축은행(현 SC제일은행)이 지어졌다. 경성부청의 이전으로 미쓰코시백화점에서 경성부청을 연결하는 소공로와 경성부청에서 총독부로 이어지는 거리는 식민지 조선의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됐다.

경성부청은 입지와 건축양식 측면에서도 식민지 건축의 전환점에 있는 건물이다. 설계 책임자였던 총독부 건축과장인 이와이 조사부로(岩井長三郞)는 교통의 중추이면서 도시 중심인 시빅센터(Civic Center) 구상을 지녔었다고 한다. 시빅센터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광장과 간선도로, 공원, 문화시설 등으로 조성되는 도심 공간을 지칭한다. 당시 바로크풍의 도시계획에서 비롯된 시빅센터의 중심에는 고전주의 건축이 입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성부청을 중심으로 하는 시빅센터 구상은 1919년 고종황제 서거 후 덕수궁을 서울의 중앙공원으로 만들려는 계획과 연계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수궁의 해체가 단순한 이왕직의 왕실재산 정리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경성부 또는 총독부의 계획 아래 진행됐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경성부청은 중앙에 탑을 세우고 좌우 대칭으로 건축된, 전형적인 고전주의 건축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고전주의 건축과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일반적인 고전주의 건축에 비해 장식이 현저하게 적고, 주출입구의 처리가 단순하게 돼 있다. 일반적인 고전주의 건축의 경우 주된 층에 접근하기 위해 한 개 층을 오르는 주 계단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데 반해, 신청사에서는 외부에는 진입 계단이 없고, 외부 계단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 점이 독특하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대부분의 관공서에서는 고위 관리의 편의를 위해 자동차가 현관 앞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차로를 계획하고 그 위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캐노피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성부청에는 VIP를 위한 현관이 없다. 이로 인해 신청사는 외부에서는 일반적인 고전주의 건축이 갖고 있는 위압감이 완화됐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배려됐다. 기존의 관공서와 다른 현관의 처리는 당시 일본에서 불고 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와 관련이 있다.

러일전쟁 이후 메이지(明治) 시기 무쓰히토(睦仁) 왕의 권위적 지배에서 탈피하여 민주화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다이쇼시기 요시히토(嘉仁)왕 집권기(1911∼1926)까지 이어졌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경성부청의 디자인에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본은 히로히토(裕仁)의 집권과 함께 군국주의화가 더욱 거세지면서 제국주의가 가속화됐고, 민주화 분위기는 소멸했다.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된 경성부청의 모습은 고전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했으나, 주출입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대리석으로 마감된 화려한 계단 홀은 경성부청사가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성부청에서 시도됐으나 미완으로 끝난 모더니즘에 대한 실험은 부민관으로 이어졌다. 부민관은 시민회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건설 자금은 기업체로부터 나왔다. 한국전력의 전신인 경성전기㈜가 경성부에 100만 원을 기부했는데, 이 중 절반의 돈으로 부민관이 지어졌다. 경성전기는 1908년 통감을 지낸 소네 아라스케(曾彌荒助)의 아들 소네 간지가 세운 일한와사㈜가 그 뿌리다. 가스 판매권을 가지고 있던 일한와사가 1909년 전차와 전기 영업권을 가진 한미전기회사를 인수한 후, 1915년에 이름을 경성전기㈜로 변경했다.

이렇게 확보한 전기와 가스영업 부문의 독점적 지위가 1932, 1933년에 만료될 즈음 공영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자, 100만 원의 기부금을 내고 독점적 지위를 연장받은 것이다. 당시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서울 인구가 40만 명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시민회관이 부재했던 점이 감안돼서 100만 원의 기부금은 부민병원과 부민관 건설에 사용됐다.

부민관은 고종황제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嚴氏)의 신위를 모신 덕안궁이 위치했던 곳에 세워졌다. 부민관이 세워진 태평로 주변은 당시 관공서와 언론매체가 집중된 경성의 중심업무지구(CBD)였다.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를 발행한 경성일보사, 한인 자본의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도 이곳에 위치했다.

태평로를 따라 지어진 부민관은 경성부청사 건립 이후 보편화된 모더니즘건축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 건물이다. 건물의 남동쪽 모서리에 위치한 44m 높이의 사각형 탑과 장식이 배제된 절제되고 수직이 강조된 입면과 매스의 분절 그리고 타일로 마감된 외관은 동시대 근대건축의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건축적 이상을 담고, 시민을 위해 각종 모임과 결혼식 등의 행사장으로 기획된 문화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체제에서 부민관의 역할은 전쟁과 동원의 구호가 가득한 장소로 사용됐다. 그 결과 1945년 7월에는 대한애국청년단원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에 의한 폭탄 투척 의거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4·19혁명의 현장이기도 했다.

경성부청이 해방 이후에도 시청의 기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에 비해, 부민관은 국립극장,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지금은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경성부청도 서울도서관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시민의 소리를 듣는 시민청(市民廳)을 내세운 시정의 연장선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시정의 주인이 시민인 시청과 광장 그리고 시민을 대변하는 시의사당이 만들어내는 도시 풍경은 소수가 권력과 지식을 독점했던 전근대를 넘어 지식과 권력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기를 희망한 근대의 시대정신과 잇닿아 있고, 이는 제국의 틀을 넘어 ‘민’의 나라를 지향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탄생의 계기가 됐던 3·1운동의 현장인 대한문과 함께 역사를 품은 도시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문화일보 6월 14일자 28면 3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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