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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12일(水)
박찬욱 “결혼뒤 10년간 생활苦… 돈벌려 글쓰고 TV서 신작영화 소개도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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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롭고 대담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투자가 안 되면 저예산 영화를 찍고 그것도 안 되면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영화감독 박찬욱

흥행 감독들에 선망·질투까지
그런 시련 덕에 지금의 나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건 충격·자극
관객들이 감각적인 자극 통해
지적인 질문까지 이르길 원해
해외 매체 리뷰서 평가할 때도
‘크레이지’란 표현 나오면 좋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다른 감독이나 유행과 다르고
내 이전 작품과도 구별하는 것
이것이 나를 이끌어가는 동력



인터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박찬욱 감독을 어렵사리 만났다. 신작 영화를 내놓으면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나 여러 명의 기자를 모아놓고 진행하는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와 잠깐씩 마주쳤지만 긴 시간 ‘독대’는 처음이었다. 지난 5월 열린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그와 프랑스 칸 현지에서 눈인사만(칸영화제 규정상 심사위원은 영화제 기간 중 미디어와 접촉할 수 없다) 나눈 후 서울로 돌아와 마포구 상수동 뒷골목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여러 자리에서 “인터뷰가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이라고 말해 온 그는 이날도 기자와 눈을 맞추지 않고, 어색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인터뷰 = 김구철 부장(문화부)

커피 탁자 위로 흐르는 냉랭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박찬욱 감독에게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말을 엄청 잘하면서 왜 인터뷰를 꺼리냐”고.

“인터뷰를 잘하는 예술가들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무성의하다든가 퉁명스러운 느낌을 전하지 않아요. 유머도 적당히 가미하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약간 건방을 떨면서 기자와 ‘밀당’을 하죠. 근데 저는 그걸 못해요. 영화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을 받아도 적당히 말할 수 있는 기술과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성의껏 대답해야 한다는 모범생스러운 강박이 있어요. 그렇게 영화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면 항상 후회가 돼요. 작품이 지닌 신비가 사라지고 쪼그라들거든요. ‘아가씨’ 때도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방울이 뭘 상징하냐’는 질문을 받고 난감했어요. 이것저것 상상하면서 봐주면 좋은데 제가 뭐라 얘기하면 그 장면이 쪼그라들잖아요. 그게 싫어서 인터뷰를 꺼리는 거예요. 상대방과 눈도 못 맞추고요(웃음).”

그가 칸영화제에 초대된 건 이번이 네 번째(개인적으로는 더 많이 갔겠지만)다. 지난 2004년 ‘올드보이’로 처음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심사위원대상까지 수상했고 2009년에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아가씨’를 경쟁부문에 올렸고 올해 처음으로 심사위원이 됐다. ‘깐느박’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심사위원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 영화 경력은 칸영화제 수상 전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제 영화 경력이야 처음으로 상업적 흥행을 맛본 ‘공동경비구역 JSA’를 기점으로 나눌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박쥐’ 전후로 나눌 수도 있지만 칸영화제 기자회견이니까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웃음). 칸영화제에 초청된 게 좋은 의미로만 기억되진 않아요. 제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계기가 된 건 좋은 일이죠. 칸영화제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영화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행사라서 칸에서 상을 받은 후 미국에서 여러 제안이 들어왔어요. 또 제가 상업적으로 위험한 영화를 만들어도 투자자들이 수출해서 벌충하면 손해는 안 본다는 계산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규정된 건 좋지 않죠. ‘올드보이’ 이후로 한참 동안 ‘아시아 액션 감독’이라는 시각이 이어지기도 했고요.”


‘거장’ 반열에 오른 박 감독은 어느 자리에서나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도 먹고사는 걸 걱정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0년 결혼한 후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2000년까지 10년 동안 먹고사는 걸 걱정하며 시달렸어요. 아이가 생긴 후 세 식구가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아내가 알뜰하고 철저한 사람이라 그 덕에 겨우 살 수 있었죠. 저는 여기저기 글을 쓰고 TV와 라디오 등 오라는 데는 다 나가서 남의 신작 영화를 소개했고요. 원고료를 받으려고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방송에 나가서 작가가 써준 대로 팩트가 틀리고 표현이 유치하고 비문인 내용을 읽어야 하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또 영화를 계속 잘 만들어서 흥행에도 성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생기는 것도 참기 힘들었고요. 요즘 제가 여유 있게 보이는 건 그때 그런 시련을 겪었기 때문일 거예요. ‘공동경비구역 JSA’가 성공한 이후로는 비교적 큰 시련은 없었어요. 지금은 욕심이 없기 때문에 긴장되고 떨리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남한테 잘 보이겠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없었고요.”

그는 자신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으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꼽았다.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초창기에는 기회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흥행이 안 돼도 제작자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으니까요. 뭔가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다 보니 몇 년씩 흘러가더라고요. 그러다가 무산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도 반복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새로운 걸 기획했어요. 다른 감독들이 하는 작업이나 유행하는 것과는 구별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전에 만든 작품과도 구별돼야 했죠. 굉장한 희대의 걸작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의 시간과 돈이 투여되는 작업을 하며 새롭게 만들어야 그나마 가치가 있다는 소신이 있어요. 제가 단조로움을 못 견디거든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왕에 만든 영화가 그냥 소모되지 않고 오래 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작품이 몇 백 개 극장에 걸리고 몇 백만 명이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10년 후, 50년 후에도 시네마테크 같은 공간에서 볼 가치가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답습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반응을 내놓기를 바라요. 예술가에게 ‘발전’ ‘최고’라는 표현은 안 어울리니까요.”

그의 별명 중 ‘배운 변태’도 있다.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상외로 “그 별명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외 매체 리뷰에 ‘크레이지(crazy)’라는 표현이 나오는 걸 좋아해요. 영화가 여러 재미를 줄 수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충격과 자극이에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지만 제 영화에서는 만져지고 냄새도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자극을 통해 지적인 면까지 올라가면 더 좋고요. 예를 들면 손가락이 잘리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줄 때 관객이 ‘왜 저렇게까지 행동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감각적 자극을 통해 지적이고 도덕적인 질문까지 일어나게 하는 게 제 목표예요. 그러려면 뭔가 미친 것 같은 게 필요하죠.”

박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며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함께 활동하는 동생 박찬경 작가 얘기도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아내와 사상이나 취향이 같진 않아도 잘 통해요. 서로 인정해주고 다른 시각에서 보완해주는 관계예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완성할 때까지 아내에게 가장 먼저 얘기하고 보여줘요. 저는 아내의 평을 경청해요. 그게 큰 힘이 되고요. 또 두 살 아래 동생인 박찬경과는 결혼하기 전까지 한방에서 같이 살았어요. 저도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동생이 워낙 미술에 뛰어나서 포기했어요. 그러면서 동생이 점점 영화 쪽으로 다가왔고 ‘파란만장’ ‘청출어람’ ‘고진감래’ 등의 단편을 함께 만들었어요. 동생과 정말 잘 맞고 함께하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그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롭고 대담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는 흥행이 말해주겠죠. 언제까지 투자가 이뤄지느냐가 중요해요. 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흥행 성적을 유지하면서 그게 잘 안 될 때는 적은 돈으로 영화를 찍어야죠. 단편을 만드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에요. 적은 돈으로 찍을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갑자기 하면 안 되잖아요. 그것도 안 되면 영화 그만두고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할 거예요. 원래 계획을 세우고 사는 성격이 아닌데 나이가 드니 걱정이 되네요(웃음).”




■ 朴감독이 소개하는 필모그래피

“JSA 성공뒤 ‘복수 3부작’ 이어져… ‘박쥐’는 내 능력의 한계까지 간 작품”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영화 중 ‘박쥐’를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내가 가장 잘 만든 영화가 ‘박쥐’”라며 “내 능력의 한계까지 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데뷔작인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부터 지난해 개봉한 ‘아가씨’까지 만들게 된 뒷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데뷔작은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그런 식으로나마 20대에 감독 경험을 한 게 잘한 것 같다는 생각에 후회는 안 해요. 두 번째 작품인 ‘3인조’(1997년)도 흥행에 실패했어요. 리뷰도 안 좋았고요. 그렇게 2편이 연달아 안 됐지만 시간이 흐른 후 3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었죠.”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를 제작한 명필름 대표인 이은·심재명 부부를 은인이라고 했다.

“당대 최고의 프로덕션인 명필름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기적이에요. ‘공동경비구역 JSA’는 위험한 기획이었어요. 북한사람들을 멋있게 그린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 조항에 걸릴 수도 있었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갔고요. 이은 대표의 용기와 배짱이 아니었으면 만들 수 없었어요.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 붐이 일어서 흥행에 도움이 됐고요.”

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복수 3부작’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후 이때다 싶어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만들었어요. 매번 계획을 세우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전작의 반작용으로 다음 작품이 나왔죠. 그래서 뜨거운 작품인 ‘올드보이’(2003년)가 나온 거예요. 두 영화는 송강호와 최민식의 차이만큼 다른 작품이에요. ‘복수는 나의 것’은 차갑고 건조하지만 ‘올드보이’는 기교적이고 화려하죠.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은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고 싶었어요. ‘봄날은 간다’를 보고 이영애가 좋은 배우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고 허진호 감독 못지않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침 이영애와 일정이 맞아서 ‘친절한 금자씨’(2005년)가 나왔죠.”

이후 박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복수 3부작’을 마치고 나니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가 나왔어요. ‘박쥐’(2009년)까지 끝내고 나니 맥이 빠져서 ‘이젠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미국에서 ‘스토커’(2013년) 연출 제안이 와서 모험을 떠났죠. 이번에 칸에 가서 니콜 키드먼을 만나 한 편 더하자고 했어요. 저는 온통 여성에 둘러싸여 있어요. 아내와 딸, 그리고 공동작가와 의상, 미술을 담당하는 동료들도 모두 여성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강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에 관심이 생겼고, ‘아가씨’(2016년)를 만들게 됐죠. 다음은 뭐가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강한 남성 영화가 나올 수도 있고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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