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뜯고, 피아노 때리고… 서양음악 속 ‘國樂’ 느꼈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청년 윤이상 연주단’에 소속된 이유진(왼쪽부터), 조한선, 이하나 씨가 지난 1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각자 악기에 기댄 채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청년 윤이상 연주단 3人 3色 ‘尹의 음악세계’

“정치적인 것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곡에 대해서 생각

尹의 불교·도교 감성 따라가
클래식의 국악적 요소 눈길
한국인이 듣기에도 편안해”

“서양 악기로 국악적 호흡을 담아낼 수 있었던 작곡가라는 점이 유럽에서 각광 받았고, 오늘날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거 같아요. 최근 재조명되는 윤이상의 음악을 현세대의 눈과 감성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올해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문화재단에서 창단한 클래식 앙상블 ‘청년 윤이상 연주단’. 8월 25일 첫 공연을 앞두고 만난 세 단원의 얼굴엔 설렘과 긴장이 섞여 있었다.

왜 젊은 음악학도들이 유럽에서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꼽혔지만 국내에서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윤이상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순수한 의문에서 만나게 된 20대 단원들이 14일 들려주는 윤이상의 음악 세계는 여느 클래식 전문가 못지않게 확고한 색깔과 고민이 묻어 있었다. 이들은 9월 17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 문화역서울 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등에서 ‘프롬나드 콘서트’를 열어 서울 시내를 ‘윤이상 청음구역’으로 만든다. 세부 프로그램은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yis100) 참조.

◇ 독일에서 더 유명한 작곡가 윤이상 = 20대 초반, 한국에서 서양 악기인 첼로를 연주하는 데 한계를 느껴 독일에 갔다가 오히려 윤이상에 대해 알고 돌아오게 됐다는 이하나(29·숙명여대 대학원 기악학과 재학) 씨. “독일에서 사사했던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수석연주자 스테판 기글베르거는 제가 윤이상 곡만 연주하면 눈빛이 달라졌어요. 프랑스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는 제 연주가 끝난 후 (윤이상의) 악보를 좀 보여 달라고 했을 정도예요.”

윤이상을 주제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논문도 쓰고 있는 이하나 씨는 그의 곡이 유럽에서 인정을 받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윤이상의 곡이 널리 연주되지 않은 만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첼로를 왜 저렇게 뜯고, 피아노를 왜 저렇게 때려. 플루트를 불면서 왜 고개를 흔들어’라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결국 국악에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첼로는 가야금 혹은 거문고, 플루트는 대금 이런 식으로 비유하다 보면 서양 사람들이 왜 윤이상의 곡에 환호하는지, 우리가 듣기에도 왜 편안한지 알 수 있을 거예요.”

◇ 동서양을 잇는 윤이상의 음악 세계 = “윤이상은 결국 음악을 통해 고국과 이국,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평화를 노래했다고 생각해요. 또 그는 1972년 뮌헨 올림픽문화제 개막작으로 창작 오페라 ‘심청’을 올려 호평을 받은 바 있죠. 제가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지점이에요.” 조한선(22·연세대 음대 피아노과 재학) 씨는 ‘청년 윤이상 연주단’ 활동을 통해 막연히 거장이라고만 느꼈던 윤이상의 음악 세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윤이상 곡에 녹아 있는 불교적·도교적 감성을 따라가다 보니 클래식 피아노곡들을 주로 연주하다가도 자연스럽게 국악적 요소에 눈이 가게 됐다는 것. 그는 연주단 활동 외에 올해 하반기 지인들과 앙상블을 만들어 윤이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가곡들을 연주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좋은 한국 클래식 음악가 알릴 기회 =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유진(25·숙명여대 음대 관현악과 졸업) 씨에게 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했던 윤이상의 음악은 난해하게만 느껴졌다. 국내에서는 윤이상 곡의 악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다시 연주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 연주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것. “외국인 연주자들과 협연하다 보면 한국은 왜 자국의 연주가들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어요. 올해가 마침 윤이상에게 기념비적인 해니 연주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한국에 훌륭한 음악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그는 “연주자로서 윤이상이 곡을 쓸 때의 감정과 환경, 곡을 쓴 목적만 순수하게 바라봤다”며 “곡 자체에 빠져들지 못하고 그 외의 정치적 요소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연주에 몰입하기 힘들 수 있어 가급적 음악은 음악으로만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음악학도들은 정치적으로 굴곡진 윤이상의 생애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음악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봤다. 끝으로 이하나 씨는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분리해 볼 것이냐, 아니면 그걸 아울러 평가했을 때 어떻게 정리해서 넘겨주느냐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달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