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 “對北 대화 조건서 멀다”…한·미 엇박자 걱정된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양국 정부가 대북(對北) 대화를 둘러싸고 갈등에 빠져들 조짐이다.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 명확히 해왔고 이 조건들은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와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 군사회담 및 적십자회담 제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 정부에서 나온 말들이니 한국에 물어봐 달라”며 뜨악하게 반응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 제의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미국 행정부의 이런 공개적 언급은 강한 불쾌감의 표시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30일 워싱턴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한다’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도록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하되, 대화는 올바른 여건에서 한다’‘ 한·미 공동의 대북정책을 긴밀히 조율해 나간다’고 천명했다. 백악관이 대북 대화 조건을 환기시킨 것은, 한국 정부 움직임이 이런 공동성명 정신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이후 대북 제재 공조에 집중해야 하는 국면에서 미국과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대북 대화에 나선 문 정부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는 셈이다.

이런 미국 입장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국제사회가 똘똘 뭉쳐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해야 할 국면이다. 한·미·일 정상이 ICBM 발사를 강행한 북한과 경제관계 축소 조치를 한다는 대북 성명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선 세컨더리 보이콧 움직임이 강화되고, 유럽연합(EU)도 추가 대북 제재에 돌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가 ‘올바른 여건’을 내세우면서도 대북 대화에 연연한다면 한·미 엇박자와 국제 공조 약화를 자초하게 된다. 또 남북 정상회담이나 경협 등의 명목으로 회담 뒷돈을 제공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방조하는 결과도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