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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19일(水)
대공황으로 본격 등장한 통화정책… 사실상 ‘정치 행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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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12일 미국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그의 뒤로 미국의 부채 금액이 카운팅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⑤ 경제정책 ‘엘리티즘’에서 ‘포퓰리즘’으로

# 1.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우린 재미있지 않아? 돈은 없어도 우린 재미있지 않아? 집세는 밀리고 버스 탈 돈도 없지만 웃으며 미소 짓자. 우리 같은 인생들을 위해. 겨울에도 여름에도 우린 재미있지 않아? 힘들고 더 힘들어지지만 여전히 우리는 재미있어.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어. 부자들은 부유해지고 가난뱅이들은 애들을 낳지….”

냉소적인 이 노랫말은 1921년 당시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Ain’t we got fun’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후세에도 많은 이가 이 노래를 불렀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위대한 개츠비’에도 나온다. 같은 해 우리는 ‘희망가’가 최초로 대중가요 레코드 음반으로 발표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노랫말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J 그랜트가 2014년 출간한 ‘잊어진 공황(The Forgotten Depression 1921: The crash that cured itself)’의 서문에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냈던 C 로머 UC버클리 교수가 당시 부실한 거시통계자료를 근거로 1920~1921년의 시련은 그렇게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하기 위해서 들이댄 것이다.

작가는 로머 교수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관련 통계보다는 당시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미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공황에서 벗어났는지를 풀어간다. 공황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4개월 후 1920년 1월부터 1921년 7월까지 18개월 동안 일어났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국민총생산(GNP) 6.9%, 물가 18%, 특히 도매물가는 36.8% 하락하였는데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에 비해 디플레이션의 정도가 매우 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체산업생산도 30% 감소하였으며 자동차생산은 무려 60% 하락하였다. 한편 로머는 GNP -2.4%, 디플레율 14.8%로 추정하였다. 공식 실업률통계는 1948년부터야 작성되어 제대로 알 수는 없으나 대략 8.7%에서 11.7%로 추정하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저술한 이유는 안정화정책 없이 빠른 시간에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데 있다. 10년 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침체라는 조어가 말해주듯이 경제회복이 더딘 현재 상황과 대조적이다. 재정은 균형을 이루었고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방준비제도(Fed)는 전후 물가상승압력이 일어나자 1919년 12월 5%로 올린 후 두 번에 걸쳐 1920년 6월 7%로 인상,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긴축통화정책을 수행했다. 당시 워런 하딩 대통령과 경제각료 모두 작은 정부를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공황은 물가가 충분히 하락하자 다시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회복모드로 돌아섰다. 이른바 애덤 스미스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이다.

# 2. 오늘날 불황이 오면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했다. 실제로 대공황 속에 치러진 1932년 대선에서 양당 후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허버트 후버는 균형재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편 M 프리드먼과 A 슈바르츠가 공저한 ‘미국의 통화사, 1867-1960’은 1913년 말 설립된 Fed가 1920년의 공황과 1929년의 대공황에 얼마나 무능하게 대처했는지 질타했다.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존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출간된 1936년이 되어서야 알려지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통화정책도 미국은 1933년이 되어서야 금본위제도를 폐기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자국경제안정을 위한 여지는 별로 없었다. 요컨대 그 시대 엘리트들이 무능하거나 무지하기보다는 균형재정과 금본위제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애호가들이라면 보고 싶어 하는 브로드웨이 쇼 ‘해밀턴’은 10달러 지폐에 나오는 미 건국의 아버지이자 중앙은행의 설립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제2대 대통령이 되었고 반(反)연방주의를 주장한 또 다른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과 격론을 벌이기 시작한 후 100년이 넘는 진통 끝에 Fed가 설립된 것은 무엇보다도 금융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초 설립 목적과 달리 실제로 Fed는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제때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자칫 돈이 비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 가 투기꾼들만 구제해 줄 수 있다는 모럴 해저드를 경계한 나머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본위제도는 당시 모든 사람에게 그토록 중요한 가치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896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W J 브라이언의 황금십자가 연설의 끝에서 명쾌히 드러난다. “노동자의 이마를 가시 면류관으로 찔러서는 안 됩니다. 인류를 황금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았던 농민, 채무자와 같은 흙수저를 대변한 포퓰리스트 브라이언은 공화당의 W 매킨리 후보에게 패하고 미국민은 금본위제를 선택한다. 금본위법이 통과된 해 이를 풍자한 동화소설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가 출간되었다.

금도 통화로 함께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브라이언 주장의 이면에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는 함의가 있으며 결국 대공황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금본위제가 폐기된 역사적 사실을 생각할 때 분명 복본위제는 정당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본위제를 고수한 것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인간(노동자)과 허수아비(농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3. 대공황은 실업이 비로소 중요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랜트의 ‘잊어진 공황’에서 실업자가 무책임한 가장으로 묘사되는 언론보도가 자주 나온다. 당시 실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실업이나 고용보다는 주가, 채권수익률이 더 중요한 경제지표였다. 기업재무이론이 미국에서 일찍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지프 슘페터가 조어(造語)한 ‘창조적 파괴’에서 드러나듯이 사람들은 불황을, 과잉생산을 치유하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았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10년 넘게 지속된 대공황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고용과 성장이 경제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뒤에 노벨상을 수상한 S 쿠즈네츠는 1934년 국민소득계정을 구축하고 표준화함으로써 정부는 경제흐름을 판단하고 정책효과를 점검할 수 있게 되었다. 디플레이션을 막고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경제개혁이 추진된 결과 1950년대에 들어서 중산층이 미국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전통사회 유럽의 상황은 더 나빴다. 1700만 명이 죽고 2000만 명이 다친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평민의 권리도 존중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 쪽 터키영토의 에게해에 면한 갈리폴리 반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8개월간 연합군과 터키군이, 5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곳이다.

아무튼 1차 세계대전은 유럽에 민주주의와 복지제도가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영국에서 1918년 남성이 그리고 10년 뒤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다. 독일에서는 세제개혁으로 소득세가 도입, 민주주의에 필요한 재정적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영국, 독일, 북유럽에서 복지의 확대가 이슈로 부상하였다.

# 4. 대공황을 계기로 보통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실업과 고용은 이제 정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경제변수가 되었다. 미국은 1946년 고용법에 뒤이어 1978년 완전고용과 균형성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 경제정책의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한 해 전 의회는 연준개혁법을 제정하여 고용, 물가안정과 적절한 수준의 장기금리를 책무로 부여했다.

한편 1979년 Fed의장에 취임한 P 볼커는 1981년 13.5%로 피크에 달했던 인플레율을 2년 뒤 3.2%로 단숨에 떨어뜨렸다. 그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1979년 11.2%에서 1981년 6월 20%로 올렸고 이 와중에 실업률은 10%를 웃돌았다.

이후 반인플레정책으로서 볼커의 급랭전략과 점진주의전략을 비교하는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점진주의는 금리를 조금씩 조정함으로써 실업률 증가분은 크지 않지만 대신 물가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비록 실업률의 증가분은 작더라도 늘어난 실업률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부작용이 따르는 것이다.

대부분 연구결과는 급랭전략이 점진주의보다 못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현시점에서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과연 급랭전략이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아무리 단기간이라 하더라도 높은 실업률을 감당할 간 큰 중앙은행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사실상 정치 행위와 다름없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 Fed가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에 극도로 신중을 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 5. 세상에 영원한 진리는 없다. 엘리티즘은 빠르게 포퓰리즘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국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영국 국민은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프랑스 국민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선택, 유럽연합(EU)을 지켰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의 촛불혁명을 선택했다. 포퓰리즘 시대에서 정부가 유권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자칫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미 영국 국민은 메이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제동을 걸었다.

과연 포퓰리즘이 엘리티즘보다 나을까? 이는 집단지성(集團知性)에 관한 문제다. 사회구성원이 다양하고 독립적이며 분산된 지식을 공유할 때 집단지성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의 참여도가 떨어지고 쉽게 휩쓸리며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시류에 편승하고 선동적이며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앞으로 4~5년 후 유권자가 내린 오늘의 선택이 과연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인지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국민의 집단지성이 잘 발휘될 수 있을지는 그 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지에 달렸다. 결국 정부가 더 좋은 성적표를 받기 위해서는 성숙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문화일보 6월 21일자 28면 4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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