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공지능 시대와 보험의 미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은 소득과 여가가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욕심을 낸 적이 있다. ‘사’ 자가 들어 있는 전문직이나,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직원이 부러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식은 더 좋은 직업을 갖게 해야지’ 하는 일념뿐이다. 그런데 부모가 바라는 안정적이고 보수 많은 직업이 자녀 세대에도 그대로 있을까.

리처드 서스킨드는 ‘전문직의 미래’라는 책에서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발달로 전통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던 전문직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의사, 교수, 성직자, 변호사, 기자, 경영 컨설턴트, 회계사, 건축가 등. 이런 전문직들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주는 대가로 적절한 지위와 보상을 받는 이른바 ‘큰 교환(grand bargain)’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왜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오랫동안 견고했던 전문직의 지위가 흔들릴까?

그것은 인공지능이 전문직보다 지식·경험·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더 뛰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를 예로 들어 보자. 인공지능은 의사보다 의학 논문을 더 빠르고 더 많이 읽고 암기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약 1분에 한 편씩 쏟아져 나오는 의학 논문을 사람이 모두 읽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잘 진단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공지능으로 의사의 역할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사회가 의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면 의사에 대한 수요와 대우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보험의 미래도 로봇 때문에 안갯속에 있다. 로봇이 개인의 위험을 측정하고 최소화한다면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줄어든다. 또한, 자율 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다. 사고가 없는데 자동차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할 이유가 없다. 보험모집업과 자동차 수리업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장래의 직업에 대한 기대마저 무너뜨리는 괴물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다.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절차(process)’를 더 잘 개선할 수 있지만, ‘내용(content)’은 사람이 더 잘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많은 의학 논문을 기억하고 수술을 잘할 수도 있겠지만, 논문 그 자체는 사람이 더 잘 연구한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위험을 더 잘 분석하여 사고를 줄일 수 있을지라도, 새로운 위험은 사람이 더 잘 찾고 개발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 즉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용어를 잘 외우고 주어진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보다는 콘텐츠를 생산할 줄 아는 사람이 오늘의 전문직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대체로 전문직이 된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이 암기할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람이 전문직이 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의 학교 교육도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입식·암기식 위주의 평가 방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할 인재를 육성하기 어렵다. 인문학이 뒷전으로 밀린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소위 실용학문은 인공지능에 밀리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인문학이 전 학문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다.

두어 달 전, 대학 졸업반이던 딸이 취직하기보다는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숨죽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소리로 반대하려다 참았다. 오늘 좋은 일자리가 내일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웹툰 작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좋은 일자리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고 자녀에게 묻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